[문학예술]우리 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찾아서'

  • 입력 2003년 5월 16일 17시 09분


◇우리 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찾아서/박성창 지음/288쪽 1만5000원 새물결

이미지와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글쓰기와 읽기 등 문학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문학이란 하나의 독립된 영역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문학을 둘러싼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염두에 둔 저자의 초점은 문학행위 가운데 비평언어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1990년대 이후 문학비평의 흐름에 대한 비판으로 모아진다.

비평적 태도의 진정성은 사유의 냉정함과 판단의 객관성 확보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문제는 문학비평이 엄밀한 과학적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비평가 역시 구체적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주관성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보들레르가 말했듯이, 비평이란 ‘가능한 한 많은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주관성’이라는 성격이 짙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의 문학비평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비평언어의 주관성이 진정성을 보증하기 위해 자의성으로 흐르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비평이란 ‘아무리 복잡한 길도 축척과 기호와 방위 설정 등의 장치들을 통해 지도로 바꿀 수 있는 내기’이며, 비평의 이런 ‘지도(地圖) 작업’은 ‘지도(指導) 비평’과는 다른 것이기도 하다.

문학에 대한 저자의 근본적 질문과 접근방식은 주로 롤랑 바르트나 조르주 바타유와 같은 프랑스 인문학자들과 한국 중견 문학평론가들의 비평언어가 내포하는 주제의식과 의제 설정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정치한 논증적 언어와 풍부한 주석, 그리고 문제 제기적 성격을 지닌 저자의 논의는 의미 있는 문학비평의 성과들을 선별해서 그것이 담고 있는 핵심사안을 요약정리하고 이에 질문함으로써 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려 한다. 표현인문학을 비롯해 김우창 백낙청 황종연 최원식 교수의 비교적 근자의 작업들을 비판적이고 논쟁적으로 사유하면서 문학과 인문학의 위기 현상, 모더니티와 리얼리즘의 테제, 세계문학의 장에서의 한국문학 위상 등 우리 문학의 현안들을 짚어나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비평담론에 대한 분석에 이어 저자의 관심은 세계문학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위도와 경도’ 위에 한국문학을 재위치시키고, 점점 희미해지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접점을 만드는 일로 옮겨간다. 이는 문화적 잡종성과 혼성성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민족적 순수함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분열증의 한 증세라는 저자의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사유의 치밀성과 논증의 정치함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저자는 냉정함과 침착함으로 일관하지만 때때로 균형감을 잃기도 한다. 가령 문학을 통해 삶의 총체적 기획을 지향한 ‘지상의 척도’의 저자 김우창 교수의 작업을 전체적으로 적실하게 평가하면서도 협소한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경사로 마무리짓는 부분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가 선택한 문학비평의 성과에 대한 선택의 스펙트럼이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문학이 제기하는 문제를 분석하면서 유종호 도정일 김화영 교수 등 역량 있는 비평가들의 다양한 작업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점도 보완돼야 할 부분이다. 물론 이런 한계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노력은 한국문학비평이 더 논증적 논쟁적 언어를 획득하고 새로운 수사학의 지평을 개척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aixprce@kkucc.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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