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초기부터 복지부동 우려 ▼
공무원은 원래 법령과 정치적 지원 아래 상관의 지시에 따라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모든 업무에서 지나치게 근거 규정과 상관의 지시 여부를 따져 업무를 적극 수행하지 않고 일상적 업무조차 소홀히 하는 무책임, 무소신, 무기강의 행위를 ‘복지부동’이라고 부른다. 최근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사태, 한총련의 5·18묘역 입구 점거사태,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의 전화불통 사건 등은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집권후반기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과 장관 등 고위정책 결정 집단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일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고위직들의 이상주의적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아울러 현실 적합성을 가진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공무원은 해당 분야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다양한 해결방안을 개발함으로써 정책의 정치적, 재정적, 관리적, 기술적 실현가능성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현장에서 이것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이 고위직의 이념적 성향만 지나치게 의식해 현실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상관의 지시와 명령에만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첫째,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끊임없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환경 속에서 실천 가능한 정책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무원은 업무수행능력을 키워야 한다. 지금처럼 1년도 못 가서 자리를 바꾸는 순환보직제 하에서는 정책환경을 이해하고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최소 3년 이상의 보직기간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창의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교육훈련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정부 내의 교육프로그램을 혁신하는 한편 국내외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위탁교육 프로그램도 활성화해야 한다. 국내 일류 대기업에 비해 10분의 1도 못 되는 공무원 1인당 교육훈련예산을 획기적으로 올려야 한다. 100원의 교육훈련 투자로 1000원의 국민가치 창출이나 비용절감을 가져온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현장에서 정확한 정보가 수집되고 분석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양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수집하고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각 행정기관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정립되어야 하고, 온라인상의 글뿐 아니라 현장에서의 목소리도 수집해 모든 공무원들이 공유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업무 구상은 고위직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무원들이 직급의 고하를 불문하고 참여해 만들어가는 조직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중 하위직 공무원들도 자신들의 구상을 발표하고 기관장과 협의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모든 공무원들은 업무에 대한 성취감과 소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능동적 업무, 제도로 보장해야 ▼
마지막으로 감사나 사정이 적발위주가 아닌 제도 개선위주로 운영되어야 한다. 전례가 없는 일을 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는 공무원에게 기존 법령을 엄격하게 해석해 제재를 가하게 되면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업무수행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사익을 위한 불법 부당한 행위는 처벌해야 하지만, 행정개선을 위한 일을 하다가 예기치 않은 실수를 범한 경우에는 처벌을 하지 않아야 한다. 기존 이해관계 속에 안주하고 있는 집단으로부터의 투서와 모함에서 시작되는 감사와 사정으로 창의적 공무원이 좌절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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