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태훈/'월드컵 휘장' 뒤의 정치인들

  • 입력 2003년 5월 20일 18시 42분


월드컵 휘장사업 비리 수사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 ‘표적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자민련 이인제(李仁濟) 총재권한대행은 19일 자신의 특보로 활동했던 송종환씨(41)가 2000년 당시 월드컵 휘장 사업권자였던 CPP코리아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명백한 정치보복”이라며 발끈했다. 이 의원은 “나는 휘장사업과 티끌만큼도 관련이 없다”며 결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나라당도 소속 의원들의 연루설이 불거지자 ‘물타기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18일 논평을 통해 “(검찰수사는) 민주당이 덮으려 하던 권력형비리들이 터져 나오자 애꿎은 야당 정치인을 끌어들이려는 구태”라며 “검찰은 설(說) 흘리기를 중단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검찰 수사에 ‘정치적 의도’라는 덧칠을 해 궁지에서 벗어나려는 ‘정치 공세’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지금까지 연루설이 나돌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 중에는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도 포함돼 있다. 이들 정치인은 당시 대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힘 있는 곳’에 로비자금이 몰린 것이다.

게다가 이 사건 관련 로비 대상자는 당시 청와대,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官界)는 물론 월드컵조직위원회까지 다방면의 실세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거론된 정관계의 고위층 인사만도 20여명에 이른다. 따라서 검찰이 특정 정파나 계파만 표적삼아 ‘족집게로 집어내듯’ 수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수사 착수 시점 역시 지난해로, 올 들어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CPP코리아에서 휘장사업권을 인수한 코오롱TNS가 부도를 내면서 정치권 로비와 비리 소문이 잇따르자 내사에 착수했다. 사건이 방대한 만큼 내사에만 7개월이 걸렸다.

당시 코오롱TNS의 부도로 인해 이 회사에 휘장상품을 납품하던 200여 업체들이 연쇄 부도 위기에 내몰렸고, 하청업체들까지 포함하면 무려 5000개 가까운 중소업체들이 큰 손해를 보았다. 이 과정에서 업체간 갈등이 표출되면서 비리의혹이 불거졌고 자연스럽게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신구속과 유무죄의 최종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무리하게 표적수사를 하면 법원에서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도를 넘어서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은 오히려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태훈 사회1부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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