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처제에게, 아들에게 혹은 여의사에게 보내는 189통의 우편엽서, 그림엽서, 봉함엽서와 56통의 편지….
우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혹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해 유년기와 사생활 그리고 성생활과 꿈생활, 즉 ‘잠자리’를 지나치게 들켰거나 과장-왜곡당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은 프로이트 자신의 참으로 멀쩡한, 그리고 아름다운 여행 서한들을 읽으며 오히려 ‘유별나고 우스운’ 경험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사실 프로이트는 생전에 의사로서, 혹은 정신분석학자로서의 명성보다 문학적 명성이 높았고, 이 점은 갈수록 처칠이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보다 질적으로 몇 단계 더 중요하다. 노벨문학상은 처칠의 정치 및 전쟁 경력과 구분되고, 그러므로 결합될 수 있지만 프로이트 ‘사상’의 핵심은 문학과 의학의 접점에 있는 까닭이다.
요컨대 프로이트의 문학은 의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의학은 문학적 상상력을 명징화한다.
21세기에도 프로이트가 유효한 것은 그 대목이다. 정신은 술과 섹스가 그렇듯 의학과 문학의 접점 속에 존재한다.
의학을 강조한다면 프로이트는 ‘신화화’하(는 것은 언제나 좋지 않다)고, 문학만을 강조한다면 프로이트는 야만화(하는 것은 의학에서 위험하다)한다. 하여, 프로이트 전공자들에게는 이 책이 프로이트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필수적일 것이다.
아니, 중간중간에 붙은 해설자 크리스트프리트 퇴겔의 안내말과 각주가 상당히 세세하고 친절하므로 전공자든 일반인이든 프로이트 전작을 처음 또는 다시 한번 읽어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장정도 특이하고 정성스럽고 멀쩡하고 아름답다. 표지의 프로이트 사진은 불가피하게 당시 시대를 닮아 다소 근엄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프로이트라는 이름이 연상시키는 우울의 깊은 골이 햇빛 쨍쨍한 대낮의 깊이로 바뀌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정말, 멀쩡해서 아름다워지는 시간이다.
김정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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