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 입력 2003년 5월 23일 17시 15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인 부탄의 삶과 자연,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 한 캐나다 여성의 흥미진진한 기록을 담고 있다.사진제공 꿈꾸는 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인 부탄의 삶과 자연,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 한 캐나다 여성의 흥미진진한 기록을 담고 있다.사진제공 꿈꾸는 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제이미 제파 지음 도솔 옮김

468쪽 1만1000원 꿈꾸는 돌

‘해외에서 가르칠 교사 구함.’

발단은 한 줄짜리 신문광고에서 시작됐다. 히말라야 동쪽에 자리 잡은 부탄에서 일할 영어교사를 구한다는 광고가 스물네살 캐나다 여성의 삶을 뒤흔들었다. 박사과정 진학과 결혼을 앞둔 제이미 제파는 모든 걸 남겨두고 지구 반대편, 미지의 먼 나라로 떠났다. 그곳에서 3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자기 내면과 불교적 사유의 새로운 만남에 눈떴다. 소박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도 발견했다. 이 책은 그 소중한 체험에 대한 유쾌하고 진솔한 기록이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둥지를 튼 부탄은 한반도 면적의 3분의 1정도, 인구 100여만명의 작은 왕국. 국민소득으로 보자면 최빈국에 속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세상의 시간을 다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더없이 특별한 곳’이다.

물론 처음엔 불편하고 힘들었다. 48시간이 걸려 도착한 부탄은 낭만적인 이상향이 아니었다. 첫 발령지는 시골의 초등학교. 쥐가 뛰어다니는 초라한 집과 그의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를 찧고 싶을 정도로 후회스러운 몇 주가 지나면서 차츰 편안함과 자유가 찾아왔다. 문화충격에서 벗어난 그는 ‘우리는 어떤 장소에 도착할 수는 있지만 그 장소와 하나가 되는 것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사람은 어디서든 살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몸을 가눌 수 없게 먹이고도 대접한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 덕이었다. 만년설을 뒤집어쓴 산봉우리와 울창한 계곡 등 원시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풍경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든 것에 이음매가 없다는 것이다. 숲을 지나서 마을로 걸어나왔다. 거기에는 어떤 차이나 구별도 없었다. 한 순간 자연 속에 있고, 다음 순간 문명 속에 있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서양과 달리 부탄에서는 할머니와 손녀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노래를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서히 변화에 익숙해질 시간을 갖는다는 예찬에 덧붙여, 잠시 머물다 가는 외부인이기에 산업화 이전 삶의 방식을 아름답게만 보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는 진중함에도 신뢰가 간다.

마침내 저자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게 된다. 얼마 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고, 우여곡절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하늘이 눈물을 떨어뜨리더니 산의 얼굴을 닦았다’는 시적인 표현에, ‘이렇게 2년만 살면 몸매가 정말 좋아질 것 같다’는 저자의 유머감각도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무엇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삶을 세밀화처럼 그려낸 이 책은 허둥지둥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듯한 대리만족을 준다.

‘고요한 들판과 숲. 허공에서 나부끼는 기도깃발, 대기 속에 퍼져 있는 햇빛에 반짝이는 소나무 냄새. 진흙과 나무로 만든 집. 처마 밑에 한 줄로 매달아 말리는 빨간 고추, 지붕의 널빤지를 누르고 있는 강에서 가져온 흰색 돌, 건초더미와 소 치는 사람들.’

여기가 이제 그의 집이 되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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