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지원 위한 소동이었나

  • 입력 2003년 5월 24일 09시 16분


어제 끝난 5차 남북 경협추진위원회의 협상 과정이나 합의 내용은 한미정상회담 분위기를 반영하는 데 미흡했다. 초반부터 ‘헤아릴 수 없는 재난’ 폭언으로 회담을 파행으로 몰고 간 북측은 40만t의 쌀과 개성공단 착공식 등 원하는 것을 거의 얻었다. 반면 우리는 북측의 막말에 대해 애매한 구두(口頭) 해명만을 얻어냈을 뿐이다. 남측이 예정된 일정을 넘겨 가면서 회담을 지속한 것이 결국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나 의심이 들 정도다.

“대결이 격화되어 북남관계가 영으로 되고 재난이 닥쳐와 북이나 남이나 불행하게 되지 않고 다 같이 잘 되기를 기대하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는 북측 구두 설명을 정부가 수용한 것은 유감이다. 정부가 ‘협상 결렬을 불사한다’는 의지까지 밝혔으면 서면으로 더 구체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회담을 깨고 돌아오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정부가 북측 기조발언 해명에만 매달리다가 합의문에 핵문제를 포함시키지 못한 것은 더 큰 문제다. 남북대화 채널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번 회담은 1차적 목표에조차 접근하지 못한 셈이다. 북한의 의도적인 술수에 남측이 다시 한번 휘말린 것 같아 안타깝다.

남북이 개성공단 착공식과 경의선-동해선 연결행사를 6·15 공동성명 3주년을 전후해 갖기로 한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얼마 전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 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하겠다고 해 놓고 북한과 이 같은 합의를 했으니 과연 ‘속도조절’ 약속은 어디로 사라졌나. 핵문제는 놓아둔 채 철도 연결을 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서 분배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은 다행이다. 이번 기회에 쌀과 비료 등 인도적 대북(對北) 지원도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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