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는 어떤 사람인가. ‘2003 경제정책 리더들’이라는 동아일보 시리즈에서도 소개됐듯이 이들은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경제정책을 펼친다. 불황이나 과열경기 때 쓸 정책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들을 만나보면 대체로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대부분이 행정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명문대 졸업에다 미국 유학 경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토론에도 능한 편이다.
과천정부청사에서 주로 일하는 이들은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채 정책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경제관료 상당수는 국내외 경제 전문가와 접촉하거나 현장을 찾아 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왜 제대로 된 해답을 내지 못하고 땜질식 대책만 양산하는가. 어느 고위 경제관료에게 이유를 따졌더니 “윗사람들의 코드에 맞는 대책 위주이다 보니 핵심을 비켜나 변죽만 울리고 있다”고 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윗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청와대에 있는 몇몇 분들과 개혁성향의 인물 그룹임을 잘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경제가 꼬여가는 원인을 살펴보자. 상당 부분이 경제 외적 요인과 정책 난맥 때문이다.
화물연대 파업 때 정부가 선심성 타결책을 내놓는 바람에 레미콘 운송업체들도 경유세를 내리지 않으면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택시 및 버스조합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금융회사 노조도 파업 중이거나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노조는 “새 정부 출범을 도왔건만 제대로 대접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고 사용자는 “친(親)노조 정부 때문에 이 땅에서 사업 못해 먹겠다”고 볼멘소리를 터뜨린다.
경기는 침체에 빠지고 부동산시장엔 투기장세가 여전하다. 도시근로자 주머니는 얄팍해지고 실업자는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식어가고 재고는 쌓인다. 은퇴 생활자들은 금리가 낮아져 이자만으로는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경상수지는 5개월째 연속 적자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콜금리를 0.25%포인트 내리거나 추경예산 4조∼5조원을 편성해 경기를 부추긴다는 것은 너무 지엽적인 정책이다. 그래, 기업들이 금리가 이 정도 낮아졌다고 투자에 적극 나서겠는가? 부동산 투기를 막는답시고 강도 높은 세제(稅制)를 동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또한 돈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한 근시안적 대책 아닌가?
나라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엘리트 경제관료들이여. 그 논리정연한 언변으로 윗사람을 설득시키시라.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정책과 책상물림 이상론(理想論)만으로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점을…. 또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투자의욕을 부추기는 것이 성장과 발전을 꾀하는 모범답안이라는 사실을….
지혜와 용기를 갖고 설득에 성공해야지 그게 실패하면 귀하들은 윗사람 눈치만 보는 ‘과똑똑이’에 불과함이 드러나고 한국경제는 망가진다.‘뜨거운 가슴’을 지닌 것으로 자부하는 ‘윗사람’들도 이젠 ‘차가운 머리’를 가진 경제관료들의 정책 고언(苦言)에 귀를 기울이시라.
고승철 경제부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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