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이의 태도나 심리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속어는 언어의 표현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한국 최초로 국어비속어 사전을 펴낸 김동언(金東彦) 강남대 교수는 “비속어가 인간의 심성을 노출시킴으로써 말의 소통을 빨리, 쉽게, 인간적으로 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비속어는 억압된 감정을 배출하는 효과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길거리 속어를 공적인 자리에 도입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갖게 될 것 같다. 속어 사용이 서민 이미지에도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역대 대통령은 ‘목이 너무 뻣뻣한’ 존재였기 때문에 탈권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인권변호사로서 노동자들과 대화할 때 “집회 참석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묻는 것보다 “쪽수가 몇이냐”고 하는 것이 친근감 고취에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표현은 국가원수의 격에 걸맞지 않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말 공관장 부부 모임에서 “국외에서 볼 때 한국이 ‘개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도 민주주의 한번 해보자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개판’ 같은 속어는 소설에서 생동감을 살리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 대사 부부들 앞에서 하는 말로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의 말이 적절하지 않으면 적절하게 거르는 것이 언론의 관행이었으나 노무현의 것은 샅샅이 뒤집어내 재밋거리로 삼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해명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대통령들은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도 공적인 자리에서 비속어를 쓰지 않았다. ‘목이 뻣뻣했던’ 대통령들의 권위가 존경스럽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거친 표현을 쓴 화자(話者)가 ‘언론이 거르지 않는다’고 따지는 것은 얼굴에 마마자국이 생긴 처녀가 거울을 나무라는 격이다.
황호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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