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들의 특성은 온순하고 선량하며 순종적이라는 데 있다. 1000만 군중이 군대나 총검도 없이 고관의 명령에 의해서만 통치되고 있었다. 나는 관청이라고는 전혀 없는 매우 외진 마을에 가 있기도 했지만 질서가 파괴되는 일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1885년 조선을 찾았던 다데슈칼리안 공후는 조선인에 대해 가진 호의적인 인상을 이같이 글로 남겼다. 이 책은 1885∼1889년 러시아 장교와 엘리트 관료가 조선 방방곡곡을 돌며 각자 남긴 조선 관찰기. 1958년 모스크바 동방문학출판사가 근대 초기 러시아인들의 동방 순례 시리즈로 출간한 책을 최근에 발굴 복간한 희귀본이다.
이들은 조선 여행 중 보고 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민중의 생활 등 모든 면에 대해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동안 영국 미국인의 시각에서 본 조선 여행기가 많이 소개됐지만 러시아인의 시각은 다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들은 W E 그리피스의 저서 ‘조선, 은자들의 나라’에 대해 ‘일본의 의뢰와 일본의 사료를 참조해 쓴 책으로 편향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러시아인의 시각은 조선인의 반일 감정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당시 조선을 놓고 일본과 경쟁하던 그들은 반일 감정에 대해 상세하고 정확하게 소개한다. 카르네프는 마침 명성황후 시해사건, 갑신정변, 단발령, 아관파천 등 굵직한 사건이 벌어지던 때 서울에 있어 정확한 사건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파렴치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 이후 조선인들이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러시아의 도움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일종의 공무 보고서이기 때문에 일반 여행기처럼 문학적인 표현이나 낭만적인 문체는 없지만 보고 들은 사실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충실하게 기록한 것이 장점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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