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쟁(政爭)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임시국회에서 재연된 이 같은 ‘구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언제까지 자리다툼을 계속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지난해 양당 총무의 합의서를 근거로 “한나라당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지난해 합의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이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각각 9 대 8 대 2로 나누되 예결위원장은 민주당이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는 이에 대해 “지난해 말 민주당 의원의 이탈 등으로 의석 수가 변한 만큼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예결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며 ‘사정 변경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 총무는 “민주당이 협상을 거부하면 30일 국회법에 따라 자유투표를 강행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회직 배분을 사후 논란의 소지가 많은 총무간의 합의에 맡긴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회 관계자는 “여야 대표가 철석같이 합의한 약속도 뒤집는 판에 법적 근거도 없이 A4용지 한 장에 쓴 총무 합의서가 무슨 구속력을 갖겠느냐”고 말했다.
국회법에는 상임위원장 등 국회직은 의원들의 자유투표로 정한다는 규정만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13대 국회부터 그때그때 총무 합의에 따라 대략 의석 수 비율로 국회직을 배분해 왔다. 그러나 구속력이 없다 보니 늘 흥정과 시비가 뒤따랐다.
미국은 200여년 전에 다수당이 상임위는 물론이고 각종 소위 위원장직도 모두 차지한다는 원칙을 마련한 뒤 이 문제로 국회가 파행된 적은 거의 없었다. 2001년 초 상원 내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석 비율은 50 대 50이었으나 공화당의 제임스 제퍼즈(버몬트주) 상원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석 비율은 49(공화) 대 50(민주) 대 1(무소속)로 바뀌었다. 20세기 들어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지만 공화당은 이의 없이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민주당에 넘겼다.
우리 국회도 이제 국회직 배분을 법규나 관행으로 명백히 해 놓을 때가 됐다고 본다.
이승헌 정치부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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