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달곤/지방분권 우선순위 문제있다

  • 입력 2003년 7월 6일 18시 32분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가 최근 지방분권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지방분권특별법과 지방일괄이양법(移讓法)을 단계적으로 제정하고 지방재정을 보강하기 위한 재원 이전 및 조세제도를 바꾸겠다는 내용이다. 또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고, 교육자치를 보강하면서 일반자치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지역주민에 의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주민투표제, 소환제, 소송제 등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이 로드맵은 그동안 학계에서 자주 거론되던 지방분권 안들의 일부를 담고 있다. 또 일본의 지방자치제를 모델로 삼아 최근 거기에서 이뤄진 조치들을 답습하고 있기도 하다.

▼받는 쪽도 준비 제대로 돼야 ▼

10년이 넘은 한국의 지방자치제에 대한 평가는 대조적이다. 지방자지체가 나라의 경쟁력에 가장 큰 장애요인 중 하나이며 민주주의의 질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이 정도면 다른 분야와 비교할 때 ‘OK’라는 그룹도 적지 않다. 이번 로드맵에 대해 전자에 속하는 집단은 그 폭이 넓어서 국가개조의 수준이라거나 속도가 빨라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고 비판할 것이고, 후자에 속하는 사람 중 일부는 이게 무슨 개혁이냐, 지방으로 좀 더 확 내려 보내라고 외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로드맵은 이양 중심의 분권을 다루고 있어 보강조치가 필요하다. 사실 분권을 하려면 주는 쪽과 받는 쪽의 문제를 동시에 살피고, 받는 쪽에도 진정 주민복리를 증대시키는 방안이 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이 로드맵은 강자인 중앙정부의 것을 지방으로 이양하면 정당성이 생긴다고 너무 단순하게 믿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7년까지 분권을 통해 성취하려는 목표와 국가 우선순위를 연계시키고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해나가야 한다. 대통령이 말하는 ‘2만달러 시대’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적 정비, 그리고 이미 도입된 지방제도의 민주적 공고화가 더 시급하다. 이런 문제들이 권한의 이양과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분권화 시도가 부정적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 계획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첫째, 당분간 경제가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에서 지방에 줄 여유자금이 없다. 적자 재정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방재원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지방간의 균형을 찾을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둘째, 권한과 재원을 내주어야 할 측의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하나의 권한을 이양하는 데서 파생되는 문제가 간단치 않다. 그리고 이에 앞서 지방정부의 역량을 개선할 조치도 고안되어야 한다. 지방정부가 주민의 신뢰를 확보하고 늘어난 권한과 재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책무성을 강화시키는 조치가 절실하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초기에는 지방자치를 위해 여러 차례 분권 시도를 했으나 지방정부의 역량 미비로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음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셋째, 업무 이양시 전문성도 함께 보내야 한다. 현재 지방의 인적자원 활용과 예산의 효율성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권한과 재원의 이양으로 지방정부는 ‘큰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인데 이대로 규모만 늘리는 것을 국민들이 동의할 것인가.

▼재원-역량-전문성 충분히 따지길 ▼

넷째, 주민에 의한 통제수단을 강화하는 투표, 소환, 소송제를 검토할 필요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직접참여제도를 보강하기에 앞서 이미 구축된 대의제도를 보강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공식 제도가 허약한데도 주민집단이나 이익단체가 강성해진 아시아의 몇 나라에서 겪는 지방의 혼란을 잘 보고 있지 않은가. 먼저 지방의회를 잘 가꾸어나가야 한다.

필자는 권한과 재정의 이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2007년까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와 선후문제가 잘못 설정되었다는 말이다. 일본이 최근에 취한 조치들을 그대로 베껴서는 안 된다.

이달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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