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에 우리는 무엇을 경험할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세간에는 드물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온 사람들이 있다. 의학적으로 사망진단을 받았거나 심장박동이 완전히 멈춘 뒤 기적적으로 소생한 경우다.
이들 중 상당수는 외부적 생명활동의 표지가 사라진 시간 동안 ‘보거나’ ‘체험한’ 일을 기억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른바 임사(臨死)체험이다.
1970년대 미국의 엘리자베스 쿠블러로스와 레이먼드 무디가 각각 임사체험 연구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이 문제는 진지한 학문적 영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쿠블러로스의 ‘사후생’(死後生·1996·대화출판사)을 비롯한 몇 권의 관련서가 선을 보여 완전히 낯선 주제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고양이 빌딩’으로 유명한 일본의 전방위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 개인적으로 사후세계에 많은 관심을 가진 그는 1990년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열린 제1회 임사체험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한편 NHK 제작 다큐멘터리 ‘임사체험’의 호스트를 맡았다. 이 프로그램은 1991년 방영돼 16%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방송매체의 한계를 절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출연자와 내레이터의 말을 문자로 옮겨보니 잡지 18쪽 분량에 그쳤다. ‘다큐에서 다 못한 이야기’를 모아 그는 900쪽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엮었다.
죽음의 문턱을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에는 여러 공통된 요소가 발견된다. ‘죽은자’는 대부분 불안 대신 안정감으로 가득 찬 심리상태를 체험한다. 많은 수는 자신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었다고 느끼며 높은 곳에서 자기의 시신과 주위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터널과 같은 어둡고 긴 곳을 지난 뒤 거대한 빛을 만나고, 신과 같은 초능력적 존재나 먼저 죽은 지인들을 만난다는 체험도 여러 사후 경험자에게 공통되는 부분이다. 생사를 가르는 일종의 ‘접경’에서 이승으로 되돌려 보내진다는 증언도 많다.
반면 각각의 경험에는 상이한 점도 많아 여러 경우에 공통된 ‘체험’으로 묶을 수 없을 정도다. 문화권에 따른 일정한 경향도 발견된다. 미국에 비해 인도인들은 ‘저승사자’를 만난 경우가 많고 체외이탈의 경험이 적다. 일본인들은 ‘크고 환한 빛’을 만나는 경우가 서구인보다 적은 반면 꽃밭 등 아름다운 자연물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각각의 사회가 가진 기성의 ‘사후세계 이미지’가 임사체험에 반영된다는 것.
임사체험에 대한 종교적 접근이 가진 의미를 무시하지 않은 채,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두뇌생리학적 분석을 폭넓게 소개한다. 죽음을 맞아 신진대사가 저하된 사람은 뇌혈류가 감소하면서 두뇌에 엔도르핀이 과다축적돼 환각제 복용과 비슷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환각제 복용자나 정신병자가 불유쾌하거나 무시무시한 상태를 경험하는 반면 임사체험자는 대개 영적 만족감에 가까운 충족감을 경험한다는 데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결국, 임사체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아직 확고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생과 사의 경계를 체험한 사람들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 인생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토로한다. 대부분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고, 타인에 대한 봉사에 삶의 큰 의미를 둔다는 것. 건강한 사람의 10%가량도 체외이탈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과 저자인 다치바나 자신이 외부 자극의 차단을 통해 ‘내세적’ 환상을 경험했다는 등의 일화도 흥미롭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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