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나는 시]'돌탑'…버릴수 없고 버리지 못한 마음

  • 입력 2003년 7월 18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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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이찬

누군가 버리지 못한 마음 하나 있어 얹었다 마음 하나

버릴 수 없어 얹었다 버릴 수 없고 버리지 못한 마음들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움 꿰차고 모였다 비 내려와

마음들을 비집고 씨 하나 낳았다 미끌미끌 흔들리다

어두운 마음들을 붙잡았다 바람 한 자락 밀려오면

사그락사그락 부딪히며 껴안았다 그랬구나 지나가는

마음들이 제멋대로 모여도 탑 하나 솟아오르니 산은

지나가는 마음의 짐들 꿈들 부려놓게 하였다 혹 누군가

버릴 수 없는 마음을 얹다 와르르 무너져버릴 저 탑이건만

돌 하나는 그대로 남았다 버릴 수 없고 버리지 못하는

마음 하나 짊어지고 가는 이 쉬어 가라고 돌 하나는 마음

하나 열어놓았다

■시집 ‘발아래 비의 눈들이 모여 나를 씻을 수 있다면’(문학과지성사) 중에서

도심을 벗어난 길이나 절 입구에는 어김없이 돌탑들이 있다. 사람들이 쉬어 가거나, 기도를 하거나, 간곡한 마음을 다스리는 곳은 비슷하거나 심지어 같다. 앞서간 누군가가 걸음을 멈추고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다스린 흔적을 남긴 곳.

잠시 걸음을 멈춘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불변을 상징하는 돌의 기운에 얹혀 이 땅에서 다른 형태로 융기한다. 어긋나는 인연들,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들, 변질되는 가치관으로 인한 고뇌, 피해 갈 수 없는 생로병사에 대한 수용을 통해 비로소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정신의 여정처럼 돌탑을 이룬 각각의 돌에서도 물씬 고뇌가 느껴진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쌓은 돌탑이 풍기는 강렬한 합일의 의미가 경이롭다.

아슬아슬해 보이는 탑의 꼭대기에다 다시 돌을 얹는 행위는 두드러지는 개인주의처럼 위태롭지만, 어떤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는 독기 같아 처연하기조차 하다.

이찬은 그 돌탑 안에다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씨 한 톨을 파종한다. 씨앗이 돌탑을 있게 한 무겁고 어두운 마음들을 붙잡고 자리를 잡는 순간 위태롭게만 보이던 돌들은 바람 속에서 서로를 껴안는다. 그 행위야말로 ‘버릴 수 없고 버리지 못한 마음’의 직관적 발아가 아니겠는가.

‘지나가는 마음들이 제멋대로 모여도 탑 하나 솟아’오름의 충만함에 잠겨 언젠가는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은 두려움에 눌려 선뜻 다가가지 못한 대상에 몰입해 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훗날 공든 탑이 무너져도 돌 하나는 씨앗으로 남아 무거운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가는 이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세계를 열어줄 것이기에.

조 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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