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 작고한 이주일씨도 어느 날 갑자기 뜨기 전까지는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밑바닥 삶을 살았다. 코미디언에게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체험이 나중에 관객을 포복절도시키는 연기의 소재와 자양분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같은 재담을 두 번째 하면 관객은 웃음을 멈춘다. 천재적인 코미디언일지라도 텔레비전 영화 공연무대에 매일같이 서게 되면 소재의 고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전성기의 밥 호프는 거의 100명의 작가를 고용한 재담 제작소를 두고 그때그때 작품을 골라 썼다.
▷“생일날 초 값이 케이크 값보다 많이 들면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다.” 100세에 가까운 나이의 생일잔치에서 밥 호프가 한 조크다.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생일 케이크 위에 초가 100개 꽂힐 때까지 장수한 이유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금연, 운동 그리고 직업에 대한 만족감이다. 그는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코미디언의 생명인 성대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컨트리클럽으로 달려가는 골프광이었다. 지금도 골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골프 조크가 그의 작품이다. 코미디언이자 댄서였던 그는 무대에서도 운동을 한 셈이다. 여기에 성공한 직업인의 만족감이 스트레스를 녹여 없앴다.
▷밥 호프는 생전에 재담을 예술로 끌어올린 코미디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재담 속에는 위트와 풍자, 세상을 꿰뚫어보는 예지가 담겨 있다.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공산주의자 200만명의 명단을 공표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매카시 의원이 모스크바 시내 전화번호부를 막 손에 넣은 모양이다.”(1954) “대학생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반항적이다. 나는 그들이 무엇에 대해 반항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반항하고 있다는 것만 안다.”(1969) 밥 호프처럼 위대한 코미디언이 한국에도 여럿 출현해 서민의 삶에 웃음을 선사했으면 좋겠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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