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쿨’은 좋다, 멋있다, 유행의 첨단이다 등을 뜻한다. 타임지 최신호는 패션 상품 TV 등에서 유행의 흐름을 빨리 알아채고 남보다 앞서 즐기는 쿨 피플을 ‘알파(alpha) 소비자’라고 소개했다. 이들의 움직임을 분석한 정보를 기업에 파는 트렌드 워처(trend watcher)가 새로운 전문직업으로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게 ‘쿨’은 최신 유행만을 뜻하지 않는다.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 나오는 풀이, 즉 ‘어떤 경우에도 냉정함과 자기 조절능력 잃지 않기’ ‘너무 열렬하거나 친근한 모습 보이지 않기’ ‘감정의 기복 절제하기’가 이들의 정서를 잘 설명해준다.
▷‘문학동네’ ‘문학수첩’ 등 문예지 가을호에 등장한 신인작품도 이 같은 경향을 드러낸다. 한때 유행이었던, 내밀한 세계를 촉촉이 그려온 여성적 글쓰기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대신 감정을 배제한 채 일상사를 건조하게 서술한 쿨한 작품이 대세를 이룬다. 젊은 세대의 쿨한 일상생활이 문화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애인과 헤어진 그들은 휴대전화 기억번지에서 전화번호를 지워버리고 나면 더 이상 기억도 못한다. 회사에선 전자결재나 메신저를 통해 싫은 사람 안 보고도 일하는 게 가능하다.
▷이처럼 ‘쿨의 시대사조’가 확산된 것은 숨가쁘게 발달하는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소유 대신 접속을 중시하는 감각적 편의적 생활양식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무게 잡지 않으면서 산뜻하게, 세련되게 등이 미덕이 된 덕분에 인간관계 역시 ‘조금만 주고 조금만 받자’ 나아가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로 바뀌는 추세다. 쿨하게 살다보면 상처받을 일이 없다. 어차피 죽으면 땅속에 쿨하게 묻히게 될 터. 굳이 살아생전에 얼음장 같은 심장으로 쿨하게 살 필요가 있으랴 싶지마는.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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