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중 북한의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이 비에 젖은 채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울면서 떼어내 ‘모시고’ 가는 일이 벌어져 화제가 됐다. 북한 사람들에게 이런 정서가 깊이 자리 잡은 원인을 찾아보면 북한 사회를 지배하는 ‘당의 유일 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의 3조 6항과 만나게 된다.
이 조항은 김 위원장과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 보존원칙을 명시해서 이를 훼손할 경우 강력히 처벌한다는 사항을 담고 있다. 만일 이 조항을 위반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그냥 지나치면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처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이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저자는 조선노동당의 규약이나 사회주의 헌법이 아니라 ‘10대 원칙’이 북한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10대 원칙’은 김 위원장이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선포한 다음 1974년 그 실천적 지침으로 선포한 것이다. 그 내용은 ‘김일성주의’를 당의 유일 사상체계로 확립하고 자신의 완전한 권력승계와 북한사회 전체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정신적 지침 및 행동강령을 담고 있다.
이것은 결국 김 위원장의 작품이었다. 그는 김 주석에서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통치권의 이양을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했다. 저자는 김 위원장에 대해 “영리하고 동시에 교활하며 예민한 스타일의 사람”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끝까지 챙기는 ‘게임’을 해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나라와 인민을 경영하는 전략가 스타일이라기보다, 눈앞에 놓인 상황을 타개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새로운 통치자가 된 김 위원장에 대한 관심은 높아갔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동안 그에 대한 저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보의 한계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
이번에 발간된 ‘김정일 리포트’는 자료와 문헌의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에서 김 위원장과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기초로 그의 삶과 권력 확립과정을 서술했다.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는 저자는 약 50명의 북한 출신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위원장의 실체에 접근했다. 그가 취재한 북한 출신 인사들은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를 비롯해 북한 출신 외교관, 인민군 장교, 대남정보사업 관계자, 김정일 친위대원, 문화예술인, 정치범수용소 출신자 등이다. 이 밖에도 많은 자료들을 상호비교하며 최대한 사실에 접근하려 노력했다.
광복 후 북한의 지도자로 낙점 받기 위해 박헌영과 김일성이 스탈린 앞에서 함께 시험을 보았다든가, 김 위원장의 출생연도가 북한이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1942년이 아니라 1941년이라는 것, 김정일의 대학 졸업논문은 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는 등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도 밝히고 있다. 남한에서 발간된 자료에 부정확하게 나와 있는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 41명의 신상기록을 최초로 정리해서 공개한 것도 중요한 성과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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