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경제부총리의 ‘열악한 언론환경論’

  • 입력 2003년 9월 7일 18시 28분


6일 정부과천청사.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는 재정경제부 월례 조회(朝會)에서 “열악한 언론환경 때문에 정부 정책의 본래 목적이나 취지를 충분히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정책 구상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정부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김 부총리는 현 정부 첫 ‘경제팀 수장(首長)’으로 6개월여 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그가 받아든 성적표는 참담했다. 작년 동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1·4분기(1∼3월)가 3.7%, 2·4분기(4∼6월)가 1.9%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한 번도 정책 실패나 자기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월례 조회에서 언론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김 부총리가 말한 ‘열악한 언론환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정책을 잘 펴는데 정권과 언론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라면 천만의 말씀이다.

언론의 기능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다. 불편한 관계는 권력 스스로 초래한 일이다. 경제정책을 감정적으로 비판만 하지도 않았다. 신문 스크랩을 뒤져보면 된다.

‘철도파업 정부대처 제대로 됐다.’(7월 1일), ‘지금 필요한 건 성장이다.’(7월 11일), ‘현대차 긴급조정권 무리 아니다.’(7월 30일)

위에 예를 든 것은 모두 본보 사설(社說) 제목이다. 7월 11일자 사설에서 보듯 김 부총리가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적극 협조했다.

또 있다. 철도파업 당시 ‘원칙과 법’을 지킨 최종찬(崔鍾璨) 건설교통부 장관에 대해서는 7월 초 사설은 물론 별도 상자기사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경제를 위해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정부를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상황도 따져보자.

현 정부는 법인세율 인하 문제를 둘러싸고 계속 오락가락하지 않았는가. 뒤늦게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출범 초 어떤 노사정책을 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경제정책의 큰 줄기를 놓고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지 않았는가. 기업의 투자심리가 무엇 때문에 이만큼 얼어붙었는가.

김 부총리는 ‘열악한 언론환경’을 거론하기 전에 ‘열악한 정책환경’을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책 실패’의 책임을 스스로 진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경제팀 수장’이라면 자기반성부터 먼저 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고기정 경제부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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