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아들 맏며느리보다 몇 십배는 더 힘든 ‘도리’가 있다. 종가(宗家)의 맏며느리인 종부(宗婦)다. 종손(宗孫) 노릇하기도 어렵지만 종부 노릇하기는 훨씬 더 힘들다. 1년에 수십차례 제사를 모셔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군말 없이 맞아야 한다. 500년 동안 화로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켜온 영월 신씨 종가, 주인을 따라 순직한 노비의 제사를 400년 가까이 지내주고 있는 경주 최씨 종가, 350년 동안 차맥(茶脈)을 이어온 해남 윤씨 종가의 오늘이 있기까지 종부들의 헌신과 노고는 추석을 맞아 며칠 상 차리기에도 넌덜머리를 내는 요즘 주부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명문(名門) 종가의 예, 맛, 멋이 각기 다른 것은 종부의 맘씨, 솜씨, 맵시가 각기 달랐기 때문일 터. 안동 권씨 댁의 오색 강정, 해남 윤씨 댁의 감단자와 비단 강정, 파평 윤씨 댁의 간장 맛이 곁들여진 궁중떡볶이, 정읍 강진 김씨 댁 게장 등은 모두 종부의 음식솜씨가 대를 이어 전해진 별식(別食)이다. 한국 고건축을 대표하는 강릉의 선교장, 충남 외암마을의 예안 이씨 종가, 안동의 학봉 김성일과 서애 유성룡 종택,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등이 꿋꿋이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도 종부들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이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시대에도 종부의 역할과 지위만은 예외였다. 종부는 집안 경제권의 상징인 ‘곳간 열쇠’를 틀어쥐고 있었고, 일가 어른들도 종부에게는 ‘해라’ 식으로 하대를 하지 못했다. 제사에서 종손이 초헌(初獻·첫잔)을 하면 종부가 아헌(亞獻·둘째잔)을 올릴 정도였다. 요즘 전국 종가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종부 모시기’라고 한다. 50대 이하 종부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때문에 몇몇 종가에서는 제사를 ‘조상의 날’로 몰아지내고 있다. 좀 더 지나면 ‘인간문화재’ 지정이라도 해야 종부의 명맥이 유지될 판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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