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석/'불로소득' 기회 줄여야

  • 입력 2003년 9월 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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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정부의 주택가격 안정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재건축시 소형 아파트 의무 비율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번 대책이 오히려 기존의 대형 아파트값을 올리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이번 대책도 과거처럼 또 한번의 땜질 처방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정부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파트값 상승이 되풀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요즘처럼 일해서 돈을 모아보겠다는 사람이 바보처럼 보인 적이 없다.

▼정책 비웃듯 널뛰는 아파트값 ▼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시장에 가치를 인정받는 상품이나 서비스, 정보 등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방법이다. 포장마차 주인의 매출소득이나 평범한 월급쟁이의 봉급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둘째는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의 가치 상승분을 현금화하는 방법이다. 재테크나 투기를 통해 부동산이나 주식가격이 상승한 뒤 이를 팔아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셋째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남이 벌어놓은 것을 이전받는 것이다. 용돈을 받는다든지 증여나 상속을 받는 것이 그것이다.

가장 손쉽게 이전받을 수 있는 남의 돈이 바로 주인 없는 돈, 즉 정부 예산이다. 요즘 집단민원을 보면 보조금 보상금 지원금의 명목으로 정부예산을 받아내겠다는 요구가 대부분이다.

정부청사 앞이나 건설현장마다 사람들이 집단으로 머리띠를 두르고 나타나 항의하고 농성하는 일이 부쩍 증가한 데에는 떼쓰고 소리 지르면 돈이 생긴다는 그동안의 경험과 학습효과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가운데 경제적 부가가치의 창조는 오직 첫째 방법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둘째와 셋째 방법은 개인 차원에서는 소득의 증가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소유권 이전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민소득 증가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한 나라의 경제력과 국민생활수준은 그 나라가 가진 생산능력에 달려 있다. 국민총생산(GNP)을 국민소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대부분의 국민이 부가가치의 창조보다 남의 돈으로 편하게 살 궁리만 하고 재테크와 투기에만 노력을 쏟아 붓는다면 그 나라 경제는 곧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많은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소득을 올리는 것보다 남의 돈으로 편하게 살거나 재테크와 투기로 돈을 버는 데 온 신경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이런 풍조는 현 정부 출범 후 더 심화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강남이나 신도시 부근의 부동산에 투자해서 큰돈 챙긴 사람들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대부분 재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분위기에 고무돼 남의 돈으로 편하게 사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로또복권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할 리 없다.

지금 한국경제가 어렵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기업인과 근로자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새로운 투자와 기술혁신을 통해 기업을 키워보겠다는 의욕을 상실했고 근로자들은 부지런히 일해 부를 축적하려는 의지를 상실했다.

▼성실한 사람 대접받는 풍토를 ▼

기업인들은 틈만 나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려 하고 근로자들은 되도록 덜 일하고 더 받아가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바꾸기보다 방관하는 모습이다.

한국경제가 2만달러 국민소득을 향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한시바삐 온 국민의 경제 에너지를 갈라먹기, 뜯어먹기, 돈굴려먹기 하는 데 쓰도록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일해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데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불로소득 기회를 줄이는 것이다. 일 안하고 버는 돈은 그것이 부동산 양도차익이든 남의 돈을 공짜로 이전받는 것이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꺾기 때문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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