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태풍 ‘루사’에 이어 1년 만에 생활터전이 또다시 태풍에 휩쓸려 나가자 대도시와 농촌지역 곳곳에서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늑장 행정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농민들은 지난해 태풍피해의 복구가 늦어지는 바람에 ‘재탕’으로 피해를 봤다며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
루사 때 군 전체가 쑥대밭이 됐던 경북 영양군. 이재민 600명의 식사를 마련해 주던 주민 노모씨(53·여·영양읍)는 “어떻게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느냐”며 “차를 타고 돌아보니 루사 때보다 3배는 더 심하게 망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양군 입암면 주민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처럼 약속하더니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정부를 믿고 생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믿으라던 낙동강 유역의 둑도 곳곳에서 터졌다. 논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강물을 바라보던 경북 의성군 구천면 미천리 주민들은 “비가 많이 내리면 둑이 터질까 가슴 졸이는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며 “올봄 많은 돈을 들여 제방보수공사를 했다고 하는데 또 무너지니까 부랴부랴 복구에 나서는 당국의 모습에 짜증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
어촌도 속수무책이었다. 경북 동해안 200여곳의 양식장은 당장의 복구에 정신이 없어 피해가 얼마나 발생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경북어류양식조합 석진환 조합장은 “전기가 끊어지고 취수구가 막히니까 양식어민들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대도시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물바다로 바뀐 대구 서구 이현동 주민들은 “당국은 배수펌프의 용량이 넘쳐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강력한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으면 추가 펌프라도 동원했어야 하지 않느냐”며 당국을 원망했다.
대구 달성산업단지에 입주한 320개 업체 가운데 침수 피해를 본 곳은 50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43)는 “산사태가 예상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도 당국은 사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공장도 어려운데 속수무책으로 침수피해를 보아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정전으로 칠흑 같은 밤을 보낸 대구시민 한모씨(36·동구 지묘동)는 “13일 밤 갑자기 정전이 돼 촛불을 켜고 전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며 “사정을 알아보려고 해도 방법도 없고 아무런 안내도 없어 우리나라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라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권효 사회1부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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