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안명환/콩알 태풍도 태풍…대비가 최선

  • 입력 2003년 9월 15일 18시 32분


일단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갔다. 그러나 이번이 끝은 아니다. 앞으로도 ‘루사’나 ‘매미’와 같은 태풍이 나타날 가능성은 상존한다. 과거에도 10월 중순까지는 태풍 피해가 있었던 사례를 기억해야겠다. 특히 아직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 태풍의 발생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므로 앞으로 태풍의 영향을 1개 정도 더 받을 가능성이 있다.

지구촌 곳곳이 홍수 폭염 가뭄 등으로 혹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태풍 ‘매미’가 우리나라를 통과할 때까지 위력을 유지한 것도 서태평양과 우리나라 남해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태평양 고기압의 흐름이 비정상적이었던 것도 지구온난화 등 전 지구촌 환경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올 한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중동 시베리아 서부지역에서는 고온현상으로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가 하면, 방글라데시 인도 등지에서는 홍수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컸다. 이런 현상은 모두 산업 발전, 인구 및 자동차 증가, 도시개발 등 환경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 규모 또한 증가 추세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8월 31일 태풍 ‘루사’ 때 강원 강릉시에 내린 870.5mm의 일(日)강수량은 관측사상 최고 기록이었으며, 올해 9월 12일 태풍 ‘매미’가 제주에 남긴 초속 60m의 최대순간풍속도 과거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었다.

태풍은 저위도지방의 따뜻한 공기가 바다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아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며 고위도로 이동하는 기상현상이다. 서태평양 상에서 연평균 26개 정도 발생하며, 이중 3개 정도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 중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것은 1936년의 태풍(당시엔 태풍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으로 사망 및 실종자가 1231명에 이르렀다. 가장 많은 재산피해를 낸 것은 지난해 태풍 ‘루사’로 총 5조1479억원이었다. 이번 제14호 태풍 ‘매미’는 우리나라를 통과할 때 중심기압이 950헥토파스칼(hPa)로 역대 태풍 중 가장 낮았고 위력도 대단했다.

태풍은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의 1만배나 되는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콩알 태풍도 태풍이다’라는 말이 있을까. 아무리 작은 태풍이라도 접근할 때는 폭풍과 호우로 수목이 꺾이고 건물이 무너지며 강과 하천이 범람하는 등 막대한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태풍의 진로를 예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해상의 초기 관측 자료가 부족한 데다 대기의 자연현상 자체가 다양하고 수많은 변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는 지역 수치모델과 통계자료를 이용한 ‘태풍수치모델’을 운영하고 있어 선진국 수준의 태풍예측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이번에 태풍 ‘매미’가 통과할 때 기상청의 예보가 좀 더 빨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질타가 없지 않았다. 이를 태풍예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욱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실현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달게 받겠다. 이와 함께 국민들도 태풍정보를 신뢰하고 방재관련기관의 조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태풍 피해를 사전에 줄이는 지름길일 것이다.

안명환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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