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프로야구]“한신 우승돌풍의 핵은 한국계 타자 가네모토”

  • 입력 2003년 9월 17일 17시 45분


‘한신 타이거스 돌풍’의 주역인 3번 타자 가네모토 토모아키(오른쪽)가 동료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아사히 신문
‘한신 타이거스 돌풍’의 주역인 3번 타자 가네모토 토모아키(오른쪽)가 동료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아사히 신문
한국 야구팬들이 삼성 이승엽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기록 경신에 정신이 팔려있는 요즘 일본열도는 18년만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한 한신 타이거스로 온통 난리통이다. 한신의 호시노 감독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고 이 팀의 한국계 선수인 가네모토도 뜨고있다.

●‘재일교포의 별’ 가네모토

한신팀의 노장으로 3번 타자를 맡은 가네모토 토모아키(35)는 우승 확정 후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은 선수다. 프로 12년차인 그의 부친은 민단 간부이며 부모 모두 한국 국적. 재일교포 3세인 가네모토는 2001년 7월 일본 여성과 결혼하면서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바람에 이제 ‘재일교포’는 아니지만 한국계인 그를 재일교포 사회는 여전히 성원한다.

1m80, 80kg의 다부진 체격인 가네모토는 올 봄 11년간 뛰어온 히로시마 컵스를 떠나 한신팀으로 이적했다. 이후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한신 돌풍이 시작됐다. 시즌 개막 3연전에서 센트럴리그 우승 후보 1위였던 요미우리를 거푸 꺾은 것.

가네모토가 한신팀으로 이적한 것은 상승 군단 요미우리를 꺾어놓겠다는 프로근성에서 비롯됐다. 히로시마에서 부동의 4번 타자였던 그는 뒤늦은 변신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히로시마가 이겨면 환호성을 올리는 것은 히로시마현 뿐이다. 그러나 한신이 이기면 온 일본 열도가 들끓는다.” “실력은 별 차이가 없는데도 요미우리 유니폼만 입으면 대단한 선수가 된 것처럼 행세하는 풍토가 못 마땅했다.”

4형제 중 차남인 가네모토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고교시절에는 통산 20홈런을 기록하며 유망주로 꼽혔다. 대학시절에는 도호쿠복지대학 팀에서 뛰며 4학년 때인 1991년 전일본대학선수권대회에서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가네모토의 어머니는 일본의 언론매체를 상대로 당당하게 한국인임을 밝힌다. 일본사회에서 한국계임을 숨기며 활동하는 이들이 많은 터에 이는 매우 드문 일. 물론 끝내 귀화하지 않은 일본 프로야구 첫 3000안타의 주인공 장훈을 예로 들며 가네모토의 귀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열광의 뒤-동서 대결과 파괴본능

일본 프로야구는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리그엔 6개팀이 있다. 인기면에선 센트럴리그가 훨씬 앞선다. 그 중에서도 현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중인 마쓰이 히데키가 뛰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초호화군단을 자랑하며 항상 리그 우승 후보로 꼽힌다. 내로라하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이 한번쯤 유니폼을 입고 싶어하는 꿈의 팀이 바로 요리무리다.

일본 열도의 동쪽, 도쿄를 근거지로 하는 간토(關東)대표 요미우리에 맞선 숙명의 라이벌이 바로 이번에 우승한 한신. 간토 지역과 뿌리깊은 지역감정을 갖고 있는 오사카 일대 간사이(關西)지역을 대표하는 팀이다. 말은 물론 음식 맛, 풍습도 일본 열도의 동서가 크게 다르다. 긴 일본 열도의 동서를 프로야구에선 요미우리와 한신이 양분하고 있다.

한신 우승에 대한 열광에는 동서 대결 의식 뿐 아니라 ‘독재 붕괴’에 대한 열광의 심리도 있는 것 같다. 바로 오랫동안 일본 프로야구의 인기를 독식하며 군림해온 ‘요미우리 정권’의 붕괴다. 고착된 질서의 붕괴를 원하는 인간의 내재적 파괴 본능이 작용한 결과다.

●호시노 열풍

열광의 한 복판에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있다.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하던 시절 주니치를 이끌었던 그는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 보다는 성깔 배인 표정이 어울리는 개성파.

호시노 감독이 리그 6개팀 중 꼴찌 아니면 5위를 맡아놓다시피하던 한신팀 사령탑에 취임한 것은 2002년 시즌. 그는 작년 팀을 4위에 올려놓더니 올해에는 골수 한신 팬조차 “설마?”하던 우승의 기적을 일궈냈다.

일본에는 요즘 호시노 감독을 찬양하는 ‘호시노 감독에게서 배우는 리더쉽’ 등의 책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주간지들은 ‘호시노 전설이 시작된다’ ‘호시노여, 빨리 구단 사장이 되라’ ‘호시노 감독을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 등의 제목을 커다랗게 뽑고 팬들의 눈을 끈다. 지난해 2002월드컵축구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른 뒤 불어닥쳤던 ‘히딩크 신드롬’과 닮았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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