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죽은 올빼미 농장'…'아파트먼트 키드'의 내면

  • 입력 2003년 9월 19일 18시 00분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소설가 백민석은 아파트먼트 키드의 황폐한 내면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려 냈다. -사진제공 허성민씨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소설가 백민석은 아파트먼트 키드의 황폐한 내면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려 냈다. -사진제공 허성민씨
◇죽은 올빼미 농장/백민석 지음/210쪽 7900원 작가정신

황혼이 내린다. 땅거미가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인형의 맨들거리는 뺨에 비치던 황혼 빛도 어둡게 가라앉고 없다.’ 그 황혼은 꼭 그래야 하듯 도시 위에 내린다. ‘옅고 투명한 벌건 빛이 경기장의 부드럽게 휜 지붕을 물들이며 내려앉고’ 있다.

‘이따윌 어떻게 황혼이라고 할 수가 있겠어? 진짜 황혼은 우리 추억 속에나 있는 거야.’ 인형은 분개한다. 그러나 추억 속의 황혼 역시 도시 위에 내렸다. ‘대체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황혼이 색이 바래기 시작했을까?’

‘아파트먼트 키드’의 감수성을 대변해 온 작가 백민석의 새 장편(長篇) ‘죽은 올빼미 농장’은 그가 다뤄온 ‘도시아이’라는 낯설지 않은 주제의 새 변주다.

작사가인 주인공 ‘나’는 ‘농가에서 키우는 황소를 본 횟수보다는 동물원에서 물소를 본 횟수가 더 많다’. 황혼과 함께 코끝에 감도는 냄새조차 들판의 호젓함 대신 ‘어떤 차에서 기름이 새거나 어디서 잔디를 태우는 듯한’ 도시의 불길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그가 ‘농장’을 찾아 나선다. 그에게 잘못 배달돼 온 편지의 발신지가 강원 고성 어딘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장’은 귀소본능을 자극하는, 아늑한 ‘어머니 자연’으로서의 장소가 아니다. 잘못 배달된 편지의 사연은 모자간의 불화, 아이의 정신질환 등 불안의 징후를 간직하고 있다.

카프카의 소설에서 성(城)으로 들어가려는 K가 마주치는 상황처럼, 지번(地番)조차 뚜렷한 농장은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에게 전하는 풍문 속에 불안의 징후들은 더욱 뚜렷하다. 작게 쪼그라져 숨져버렸다는 농장 아이들의 엄마, 종적을 알 수 없다는 아이들….

‘나’와 동행하는 제2의 주인공은 ‘인형’이다. ‘나’와 이야기하고 토라지고 화장하는 ‘인형’은 분명 ‘나’의 동거녀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점차 이상한 표지들이 섞인다. ‘나’는 인형과 함께 여관으로 들어가지만 프런트 직원은 아가씨를 불러주겠다고 제안한다. 왜 인형은 제3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궁금증은 ‘농장’의 폐허로 짐작되는 진창에 ‘나’가 인형을 수장시킴으로써 풀린다. 비유가 아닌 실제 인형으로서의 인형, 그것이 주인공에게 ‘지연된 유년기’의 표상임은 비로소 명백해진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이 지나고 외로움에 익숙해져서, 혼자서도 잘 놀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인형은 내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홀로였던 도시의 유년기를 ‘농장’에 묻어버린 주인공은 이제 어떤 여정을 떠나는 걸까.

작가는 ‘전원회귀’의 흔한 해결책이 내미는 손을 잡지 않는다. 구원의 실마리는 작품 중반에 나타나는 여자 동창생 ‘민’에게서 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폐허에서 안정을 느끼는’ 여자이며, ‘아파트먼트 키드에게 자연이란 아파트가 사라진 바로 그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며, 유일하게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택시를 타고’ 떠나고, 해결은 지연된다. 정착을 위해 설계된, 아파트먼트 키드의 고향인, 도시에서, 떠돌기는 계속된다.

언제까지? 결론은 유예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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