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판타지 문학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했던 고딕소설 가운데 하나이고,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영국 판타지의 고전이다. ‘해리 포터’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영국의 문학전통을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다. ‘문화 강국’ 영국에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판타지 전통은 한국에도 있다. 소설가 복거일은 전래 문학 가운데 ‘구운몽’ ‘금오신화’ ‘홍길동전’을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로 꼽는다. 최근 국내 판타지 작가들이 점차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판타지 문학이 꽃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제 서울에서는 한국과 영국의 판타지 문학 전문가들이 모여 세미나를 열었다. 두 나라의 판타지 문학을 비교 분석하며 앞으로의 동향을 전망했다. 역시 우리의 관심사는 한국에서도 ‘해리 포터’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상상력, 창조력은 뛰어나다. 일본에 크게 뒤져 있던 한국의 대중문화는 아시아 전역에서 ‘한류 열풍’을 만들어 낼 만큼 놀랍게 성장했다. 한국 영화는 거대자본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선전하고 있다. 가난한 이혼녀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의 성공으로 몇 년 만에 영국여왕보다 부자가 될 만큼 문화의 부가가치는 폭발적이다. 한국인의 돋보이는 아이디어와 창조력을 문화 분야에 발휘해야 할 때가 됐다.
▷얼마 전 우리 정부도 ‘문화강국’을 선언했지만 구호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이 중요하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해리 포터’를 읽고 “이렇게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다는 데 놀랐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결정자들이 문화 육성에 애정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문화계 내부에서조차 판타지 문학은 그저 그런 통속물 아니냐는 시큰둥한 반응이 없지 않으니 발상의 전환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 같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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