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고 이병철(李秉喆) 전 삼성 회장과 고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회장 등과 함께 광복 후 한국 경제를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경영인으로 꼽힌다.
고인은 19세였던 1936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10년간 독학하면서 평생의 사업 이념이 된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강인한 정신력’과 ‘발명가적 개척정신’을 체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 후 귀국해 사업을 물색하던 고인은 자본이나 기술의 축적이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풍부한 인적자원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교육입국과 경제 자립을 위해 1958년 대한교육보험을 창업했다.
대산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교육보험은 우리나라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과 맞물려 우리나라 보험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
또 국내 최초로 퇴직보험과 암보험을 선보이는 등 보험상품 개발에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다.
1983년에는 국내 최초로 책임준비금의 100%를 적립해 국내 보험업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88년부터 계약자 배당시대를 열기도 했다.
고인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사회공익활동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1980년 단일 매장면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교보문고를 설립한 데 이어 대산문화재단, 대산농촌문화재단,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을 잇달아 설립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신 창립자는 생전에 세계보험협회(IIS)가 수여하는 세계보험대상과 세계보험전당 월계관상을 받았다.
또 아시아 생산성기구에서 APO국가상을, 우리나라 정부에서 국민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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