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금지된 56홈런?…이승엽 99년이어 올 54호서 침묵

  • 입력 2003년 9월 25일 17시 57분


다시 3경기째 침묵이다. 52, 53호를 연거푸 터뜨린 10일 한화전 이후 8경기 연속 무 홈런부터 시작하면 최근 12경기에서 1홈런의 극심한 슬럼프. 이제 7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리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지만 일본의 야구영웅 오 사다하루(왕정치·현 다이에 호크스 감독)가 1964년 세운 한 시즌 아시아 홈런 기록(55개)은 갈수록 높아만 보인다. 무슨 악령이라도 있어 방해하는 것일까.

이달 초만 해도 ‘라이언 킹’ 이승엽(27·삼성)의 기록 경신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시기만 문제였을 뿐. 그러나 이젠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눈에 띄게 공을 빼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 투수의 집중 견제에 따른 조바심이 최대의 적.

일본에서도 그동안 오의 기록을 깨기 위한 수많은 도전과 좌절의 역사가 있었다.


85년에는 용병 1세대인 랜디 바스(한신)가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85, 86년 연속 타격 3관왕을 차지한 괴물타자 바스는 54홈런을 날린 뒤 남은 2경기에서 오의 현역 시절 소속팀 요미우리로부터 전 타석 볼넷을 얻는 ‘추잡한 승부’의 희생양이 됐다.

2001년에는 터피 로즈(긴테쓰)가, 지난해에는 알렉스 카브레라(세이부)가 잇달아 55홈런 타이기록에 만족해야 했다. 로즈는 54호를 날린 뒤 7경기 만에 55호를 터뜨렸고, 이후 5경기에선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을 만나지 못했다. 그나마 시즌 마지막 경기가 돼서야 일본 입장에서 보면 용병인 한국의 구대성(오릭스)을 만나 정면승부를 펼치는 행운을 잡았지만 화룡점정에는 실패했다. 카브레라 역시 5경기를 남겨놓고 55홈런까지 갔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승엽도 예외는 아니다. 첫 도전인 99년에는 106경기 만에 48홈런을 날려 당시 60홈런까지 예상됐지만 곧바로 12경기 무 홈런의 혹독한 슬럼프에 빠진 끝에 54홈런에 그쳤다. 올해도 6월엔 한때 예상 홈런이 70개를 넘었고 이달 10일까지만 해도 60개였지만 이젠 57개로 내려갔다.

베이브 루스를 내보낸 1918년 이후 85년간 우승하지 못한 보스턴의 ‘밤비노 저주’에 비유될 만한 ‘오의 악령’. 과연 이승엽은 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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