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길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시선집 ‘酒幕에서’(민음사) 중에서
곳간에 도토리 쟁여두고 먹는 다람쥐가 아니라, 눈 쌓인 들판을 날며 그날그날 이삭 주워 먹는 작은 새 한 마리 선연히 눈에 밟힌다. 언 발로 ‘얻어먹은 점심 한 끼’가 저토록 호사롭고 민망했을까.
잔칫집 허드렛일 거들다 자식들 먹일 봉송 싸들고 가는 에미처럼 저이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굶주린 누군가를 불러낸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한데 자기한테 베푸는 말뿐인 위로가 왜 저리 가슴 아프고 다시 못 볼 풍경인가?
모처럼 ‘배부른 저이’가 ‘배고팠던 자신’을 양지녘으로 불러낸 까닭은, 배고팠던 나를 잊는 것이 배고픈 세상과 사람들 모두를 잃어버리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벼락부자가 되어 근본 홀랑 까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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