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토요일밤의 분노 “이승엽에 왜 고의 볼넷…”

  • 입력 2003년 9월 28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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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에 야구는 없었고 성난 팬들의 분풀이만 가득했다.

물병과 오물이 그라운드 안으로 쏟아졌고 거친 욕설이 난무했다. 롯데-삼성전이 열린 27일 부산 사직구장. 시즌최다관중(1만1723명)이 들어찼던 축제분위기는 한순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팬들을 분노케 한 것은 아시아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는 삼성 이승엽에 대한 고의 볼넷. 삼성이 4-2로 앞선 8회초 1사2루. 롯데는 앞선 3타석에서 정면승부했으나 1루가 비자 다음타자 양준혁을 병살타로 유도하기 위해 이승엽을 고의 볼넷으로 걸렀다.

순간 이승엽의 56호 홈런 신기록을 보기 위해 모인 관중들은 홈팀 롯데를 비난하는 야유와 함께 일제히 오물과 쓰레기를 운동장 안으로 던졌고 경기가 중단됐다.

1시간이 지나도록 경기가 속개되지 않자 삼성 김응룡 감독은 “다음 경기 때문에 대구로 가야 한다. 빨리 처리해달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심판진도 손을 쓰지 못했다. 프로야구에서 팬들 때문에 몰수경기가 선언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롯데와 김용철 감독대행을 비난하는 팬들의 야유와 오물투척이 계속되자 김 감독대행이 마운드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승부에서 이기려면 그 상황에서 볼넷을 지시하는 게 당연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감독이 작전을 팬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것은 초유의 일. 이어 1시간34분 만에 경기가 재개됐다. 그러나 이미 많은 팬이 운동장을 떠난 뒤였다.

김 감독대행은 “문동환(롯데투수)이 99년 이승엽에게 43호 홈런을 맞은 뒤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며 “이 같은 전철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승엽은 경기가 끝난 뒤 “롯데가 기록달성을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맞대결을 피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승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1사 1,2루를 만들어 병살을 노리는 작전은 충분히 나올 만하다는 설명.

그러나 이날 운동장으로 뛰어들다 다리를 다친 한 팬은 “정정당당한 승부와 홈런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9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경기장 관리 책임을 물어 홈팀 롯데구단에 징계를 내릴 예정이다.

부산=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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