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이승엽 고의 볼넷 문제 있나 없나

  • 입력 2003년 9월 29일 15시 49분


어떻게 치라고… 27일 경기 8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삼성 이승엽(오른쪽)의 머리 위로 볼이 들어오고 있다. 부산=뉴시스
어떻게 치라고… 27일 경기 8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삼성 이승엽(오른쪽)의 머리 위로 볼이 들어오고 있다. 부산=뉴시스
‘꼴찌’니까 한국 프로야구를 위해 이승엽의 희생양이 되어도 좋다?

지난 2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삼성전에서 이승엽의 고의 볼넷이 원인이 돼 벌어진 폭력사태를 계기로 개인 기록과 팀 성적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두고 야구팬들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 홈런신기록에 도전중인 ‘이승엽 효과’로 침체된 프로야구의 인기가 조금씩 살아나려는 마당에 롯데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주장은 전자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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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프로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홈팬들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인데 당시 역전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에선 고의 볼넷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다.

문제가 된 삼성의 8회초 공격. 롯데는 1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승엽을 고의 볼넷으로 걸렀다. 다음타자 양준혁을 병살타로 처리하겠다는 의도.

순간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을 보기위해 모인 1만1723명의 관중들 중 일부가 롯데를 비난하는 야유와 함께 물병과 컵라면 쓰레기통 등을 운동장 안으로 집어 던졌다. 흥분한 일부 관중은 관중석에 불까지 질렀다. 부상자도 생겼다. 경기는 중단됐고 1시간 34분이라는 역대 최장시간 경기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롯데 김용철 감독대행은 마이크를 잡고 마운드위에 올라가 “승부에서 이기려면 그 상황에서 볼넷을 지시하는 게 당연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홈팬들을 설득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이날 ‘관중난동’의 원인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이승엽이 홈런칠 기회를 빼앗겼다는 것.

하지만 딱 한 타석뿐이었다. 롯데 투수들은 앞선 세 타석에선 이승엽과 정면 승부를 걸었다.

문제가 된 고의 볼넷을 이해하는 야구팬들의 입장은 이렇다.

“롯데도 이기려고 존재하는 프로야구 팀이다. 홈런 한방이면 역전이 힘들기 때문에 내보낸 것이다.”-윤성인(yunsaint)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선수는 주인공이고 나머지 선수들과 상대팀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단 말인가. 야구는 양팀 모두 승리를 위해 뛰는 스포츠이지 어느 누구를 위한 축제는 아니다”-‘lookingglass’

또‘jazz 1019’란 야구팬은 “김용철 감독대행의 입장에서 보면 올시즌 홈 최다관중이 모인 자리에서 내년시즌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지극히 정상적인 플레이 였다”고 옹호했다.

이 처럼 고의볼넷을 이해한다는 야구팬들은 이날 난동을 부린 관중들을 ‘야구팬이 아니다’며 비난했다.

‘hys830’씨는 “과연 그들을 진정한 야구팬이라고 할수 있을까.부산팬들은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산다는 말이 있을만큼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늘 본 부산팬들의 모습은 이승엽선수의 홈런볼을 주어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며 못마땅해 했다.

반대로 고의 볼넷은 잘못 됐다는 사람들의 입장.

“야구는 개인보다 팀이 우선인 게 사실이다.하지만 무엇이 한국 야구를 위한 것인지….”-‘kimtnal1’

“프로는 관중을 배려해야 한다. 오늘 평소관중의 20배 이상의 관중이 이승엽선수를 보기위해 사직구장을 찾았다. 관중이 왜 왔는지 생각 못한 감독의 작전이 아쉽다.”-‘백의신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팽팽한 설전.

그렇다면 현장에서 객관적으로 경기를 바라보며 중계한 하일성 KBS 야구해설위원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하위원은“대승적인 차원에선 정면승부가 필요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위원은 “그날 사직구장을 찾은 관중들은 이승엽의 홈런을 보기위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왔다. 만일 롯데가 4위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고의 볼넷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았는가. 올시즌을 끝으로 이승엽과 심정수가 미국에 진출한다고 가정하면 한국프로야구에서 이번과 같은 홈런 이벤트는 재현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고의 볼넷은 무리였다는 생각이다. 굳이 걸러 내보낼 생각이었다면 유인구를 던졌어야 했다. 그랬다면 관중들이 그렇게 흥분 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위원은 “그럴수 밖에 없었던 김용철 감독대행의 입장을 이해 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위원은 “김 감독대행은 올 시즌 성적 여하에 따라 대행 꼬리표를 뗄수 있을지 여부가 가려진다. 당연히 이기고 싶었을 거다. 야구 자체만으로 따지면 정석 플레이 아닌가. 단지 타석에 이승엽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꼬였다”고 말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한때 관중 500만을 돌파 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 최근 인기가 시들해져 올해는 300만 관중도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행히 시즌 막판 ‘국민타자’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 도전으로 조금씩 인기를 되찾고 있는 형편.

한쪽에선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확실한 카드’ 이승엽이 계속해서 홈런포를 쏘아 올릴 수 있도록 무조건 정면 승부를 하라고 주문한다. 다른 한편에선 야구가 개인의 기록 달성을 위해 승리까지 버려야 하느냐고 불평이다.

27일 사직구장의 ‘고의 볼넷’을 계기로 불거져 나온 이번 논란은 시즌이 끝날때 까지 계속 될 것 같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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