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경제여건이 불투명해지자 정부는 올 4·4분기 경기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추가경정예산과 예비비의 연내 조기집행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최근 불안해지고 있는 원화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외국환평형채권 발행한도를 증액한다고 한다.
▼ 잘못된 소비확대 불안 키울수도 ▼
흥미로운 점은 정부가 지난해 5월 신용불량자 양산을 막기 위해 마련한 신용카드 대책의 핵심인 카드사 현금서비스 비중을 50% 이하로 줄이도록 한 조치를 당초 2004년 말에서 2007년 말로 3년간 유예한 것이다. 아울러 카드사의 1개월 이상 연체금액 비율이 10%가 넘을 경우 경영개선권고를 내리도록 한 ‘적기 시정 기준’도 완화하겠다고 한다.
카드사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고 카드 빚을 진 사람들도 환영할 것이다. 사실 이번에 완화된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비중 규제는 그동안 시장원리를 무시한 ‘관치금융 하의 저질 규제’로 비판받아왔다. 카드사들이 본래의 업무인 신용판매보다 현금대출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현금서비스 비중을 직접 규제하게 되면 카드사의 영업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된다. 이 경우 카드사들은 수익성이 높은 현금대출을 줄이기보다는 무이자 할부 등 신용판매액을 늘리는 방법으로 규제를 회피하려 한다. 따라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5월 이후 굳건하게 고수했던 현금서비스 비중 규제를 완화한 것 자체는 카드사들의 영업활동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잘된 일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카드사에 대한 정부의 이번 대책은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경기 회복이 지연돼 신용불량자가 340만명을 넘어서고 신용카드대금 연체율이 10%를 넘는 현 시점에서 현금서비스 비중 규제유예 내지 카드사 적기시정기준 완화는 자칫 경제 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 정부는 악화된 카드사 경영을 개선하고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했다고 하지만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카드사의 경영 악화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으로 경제가 불안해지자 당장 카드사의 재무건전성이 문제시됐고 곧장 카드채 위기로 치닫게 됐다. 이에 놀란 정부는 신용카드사의 자구노력과 카드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현금서비스 비중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지 않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올 하반기에 정부 예측대로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카드채 부실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것임을 예측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 경기 회복의 지연으로 카드사뿐 아니라 투신 등 제2금융권의 불안과 금융 불안에 따른 한국 경제 장기불황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는 카드사에 대한 규제완화보다는 그동안 소홀히 했던 금융 및 경제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물론 규제완화는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기업의 투자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보다는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투자를 부추기는 조치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경제여건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을 때 카드사에 대한 금융규제 완화로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것은 돼지꼬리로 돼지를 흔들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 눈앞 효과보다 구조조정 더 시급 ▼
굳이 현금서비스 비중을 완화할 것이면 차라리 4월 카드채 종합대책 발표 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또 현금서비스 비중 50% 준수 시한을 1년 정도만 연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3년을 연장할 바에야 아예 현금서비스뿐만 아니라 기업의 영업활동에 대한 직접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는 대신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여 부실한 카드사는 경제에 충격이 가더라도 과감하게 퇴출시키는 방법이 정부가 표방하는 개혁에 부합하는 길이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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