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에서는 지위에 따라 색깔이 다른 복장을 입는다. 일반 사제는 검은색, 주교는 자색, 추기경은 적색, 교황은 백색이다. 붉은 옷을 입어 홍의주교(紅衣主敎)로도 불리는 추기경은 교황이 지명하는 로마 가톨릭의 ‘원로원 의원’으로 교황의 피선거권(종신)과 선거권(만 80세까지)을 동시에 갖는다. 교황이 선종(善終)하면 15일 안에 전 세계 추기경들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진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게 된다. 이로써 전 세계 추기경 수는 195명이 되었고 교황 선거권을 갖는 추기경도 135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에 처음으로 추기경이 탄생한 것은 1969년. 마산교구장을 거쳐 서울교구장으로 부임한 지 1년밖에 안된 김수환(金壽煥) 대주교가 47세에 ‘일약’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이다. 부임 초기 적지 않은 ‘텃세’에 시달리기도 했던 김 추기경은 예언자적 안목과 리더십으로 한국 천주교를 이끌면서 천주교 수장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수년 전 교구장직에서 은퇴했고 지난해 만 80세가 넘어 교황의 선거권을 상실했다. 현 상태대로라면 한국은 새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권이 한 표도 없는 셈이다.
▷세계 가톨릭 복음사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선교사가 파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의 씨앗을 틔웠고, 유례없는 탄압 속에서도 103위의 성인을 탄생시킨 국가다.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 교세가 위축되고 있는 현실에서 430만명의 정예 신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 34년 동안 ‘제2의 추기경’을 내지 못해 섭섭함을 넘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있다. 가톨릭 교세가 한국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일본은 이번까지 모두 5명의 추기경을 배출했다. 김 추기경이 교회의 시대적 소명을 잘 감당해 왔기에 ‘두 번째 추기경’ 탄생에 거는 우리의 기대 또한 각별하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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