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삼성-LG전이 열린 잠실구장. 이씨는 연장전까지 5시간이나 계속된 경기를 끝까지 지켜봤다. 남편이 타석에 등장하면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고 홈런을 터뜨리지 못하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다리던 홈런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의 눈시울은 어느덧 젖어 있었다.
“집에서 TV로 볼 수도 있지만 직접 경기장에 와서 응원하면 승엽 오빠가 더 힘이 날 것 같았어요.”
그는 경기 후 남편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얼굴 잠깐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원정경기 땐 게임이 끝나면 선수단은 바로 지정 숙소로 가요. 구단이 ‘외출금지령’을 내리는 바람에 밤에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이씨는 대신 꼬박꼬박 심야통화로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30일에도 잠실구장을 찾았다.
“오빠가 55호 홈런을 치고 나서 한결 밝아졌어요. 그 전까지는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옆에서 바라보는 저도 무척 안타까웠어요. 집에서라도 편히 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요사이 이씨는 요리 배우기에 한창이다. 집에서 틈나는 대로 요리책을 뒤적이고 직접 재료를 사와 음식을 만든다.
“올여름엔 삼계탕을 자주 끓여 줬어요. 요즘은 오빠가 먼저 삼계탕 타령을 할 정도예요. 솜씨가 제법이라니까요.”
어느덧 결혼생활도 1년 하고 9개월째. 결혼할 당시만 해도 야구의 ‘야’자도 몰랐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에 나온 야구기사를 꼼꼼히 읽으며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골수 야구팬’이 됐다.
지난달 21일 이승엽이 대구 LG전에서 8경기 침묵 뒤 54호포를 쏜 것도 아내의 조언 덕분이었다. 이씨가 이날 아침 “초구 이후에 밀어 치라”고 조언했고, 이승엽은 그 말대로 밀어 쳐 54호 홈런을 만들어 냈다는 것.
“제가 야구를 잘 아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신문을 읽다 보니까 ‘밀어 치라’는 말이 있기에 오빠에게 살짝 말해준 것뿐이에요.”
빼어난 미모로 남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씨는 최근 인터넷에 팬카페(cafe.daum.net/leesj1004)까지 생겼다. 개설 나흘 만에 회원수가 벌써 500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
이씨는 “어머, 팬클럽이 생겼다고요? 저도 몰랐는데, 한번 들어가 봐야겠네요”라며 얼굴을 붉혔다.
이씨에게 이승엽이 언제 56호 홈런을 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오빠가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타석에서 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멋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르는 일이잖아요. 언제든지 쳐주기만 하면 고맙겠어요.” 56호 홈런 얘기가 나오자 다시 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신은 아내의 눈물을 헤아리고 있다’는 유대인 격언이 있다. 정말 지금 신은 이씨의 눈물을 헤아리고 있을까.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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