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29…낙원에서(7)

  • 입력 2003년 9월 30일 18시 05분


보라 용사의 빛나는 얼굴

적 섬멸의 일념

불길처럼 타오르니

이 산 저 산에 메아리치는 포성 소리

우레 같은 함성 소리

들가의 풀 붉게 물들이고

말과 함께 쓰러지는 적의 무리

불길이 치솟네 산 속 집

비치는 해의 찬란함이여

성급한 병사가 총검으로 벽을 치며 노래를 막았다.

다들 기다리고 있다구!

빨리 못 끝내!

“너무 오래 있으면 아버지가 헌병대에….”

“쓸 데 없는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원래 한 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거야, 저런 인간들 떠드는 소리는 못 들은 척 해. 나미코의 몸을 잠시라도 쉬게 해야지…그리고, 누구한테 풀어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다음에는 언제나 얘기할 수 있을지….”

“어디 가나요?”

“빈양도(賓陽道)를 확보하러 가야 돼.”

더는 못 기다리겠다!

지루냐!

돌격한다!

나무문을 걷어차는 병사도 있었지만 가토 중사는 굳은 결심이라도 한 표정으로 수건을 짜서 나미코의 이마에 올려놓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아아, 한 개비밖에 안 남았군…번갈아 피자구.”

“난 됐으니까.”

“…나미코는 눈 꼭 감고…잠들어도 괜찮아….”

눈꺼풀 사이로 성냥불이 켜지는 것이 보이고, 가토 중사의 낮은 목소리가 오른쪽 귓전에서 들렸다.

“…중대장이 ‘수상한 놈은 전부 죽여라, 수상한 집은 전부 불태워라’고 명령했어. 하지만 알 수가 있나, 병사들은 농부 차림으로 짚더미를 실은 수레에서 총을 꺼내 들고 쏘지, 젊은 처자들도 품속에 숨겨둔 수류탄을 던지지, 누가 병사인지 누가 양민인지 구별할 수 없었어. 그렇다고 주춤하면 내 목숨이 없어지고. 그래서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나오는 짱꼴라는 전부 쏴 죽였어.

온 사방 길에는 짱꼴라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시체를 밟지 않고서는 전진할 수도 없었어. 밟으면 으윽, 허억하고 신음하는 자들도 있으니까, 반격이 두려워서 총검으로 목을 찔러 숨통을 끊어놓고 전진하는 거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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