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안세영/대학생의 해병대 열기

  • 입력 2003년 10월 5일 19시 01분


1950년 6월 25일 전선을 급습한 인민군은 국군을 파죽지세로 내몰아 8월 초에는 선봉사단이 경남 마산 외곽의 진동리 고개에 다다랐다. 그 고개만 넘으면 부산까지는 내리 평평한 김해평야다. 남조선 함락이 코앞에 다가선 것이다. 그런데 그 고개에서 송곳같이 활로를 뚫던 그들의 정찰대대가 국군의 조그만 부대에 의해 섬멸 당했다. 비록 소규모 전투였지만 연전연패하던 국군이 개전 이후 처음 맛본 깨끗한 승리였고, 낙동강전선 방어에 필요한 천금같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 부대를 ‘귀신 잡는 해병’이라 부른다.

▷이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해병대는 9·18 서울 수복 때 제일 먼저 중앙청에 태극기를 휘날린다. 그 후 수많은 전투에서의 화려한 전과를 통해 해병대는 적으로부터는 두려움을, 국민으로부터는 사랑을 받는 군대가 된다. 1960년대에는 베트남전에 파병되어 많은 젊은 해병이 인도차이나 정글에서 산화했다. 지금도 뛰어난 기동력을 지닌 한국 해병사단을 두려워하는 북한군은 10배에 가까운 병력을 해안에 배치하고 있다.

▷1960년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라는 영화의 높은 인기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으로부터 갈채를 받던 이 부대는 군사독재 시대에 접어들며 시련에 직면한다. 독특한 군인정신을 지닌 해병대의 독자적 지휘체계를 부담스러워 한 군사정권에 의해 해군에 편입되고, 언젠가부터 시중에 ‘개병대(?)’, ‘해병대 곤조(못된 근성)’라는 말이 유행했다. 국민의 관심은 낮아지고 빨간 명찰을 단 병사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요즈음 대학생들 사이에서 해병대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장교는 물론 사병으로 입대하려 해도 몇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기에 재수 삼수까지 한다고 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한국 해병대처럼 고학력 병사로 채워진 군대가 드물다고 한다. 비단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은 철부지 자식을, 기업은 영업사원을 해병극기캠프에 보낸다. 이 같은 열기의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입어야 할 군복이라면 강한 군대에서 화끈하게 젊음을 불태우겠다” “해병대에 갔다 오면 뭔가 자신감이 생기고 달라진다” 등이다. 군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신의 아들’과 이념적 혼란에 빠진 젊은이가 많은 시대에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해 주는 신선한 충격이다. 조국에 대한 의무를 회피하고 이념적으로 혼란스러운 자들이 있더라도 이처럼 건전한 국가관을 가진 야성적 젊은이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다.

안 세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syahn@ccs.seogang.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