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9월의 4분의 1'…떠난 여인 -사라진 건물 그립다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7시 47분


◇9월의 4분의 1/오오사키 요시오 지음/184쪽 8000원 황매

장기(將棋) 전문 잡지 편집장으로 근무하다 2000년 44세라는 나이로 데뷔, ‘신조(新潮)학예상’ ‘고단샤(講談社) 논픽션상’ ‘요시가와에이지 문학신인상’ 등을 수상한 늦깎이 일본 신예작가의 단편집. 지난해 ‘소설 신조’ 등에 발표한 네 편을 묶었다.

표제작 ‘9월의 4분의 1’ 주인공은 오랫동안 소설가의 꿈을 간직한 남자. ‘원고지 3장도 쓸 수 없어’ 꿈을 접고 가전제품 판매원의 삶을 시작했지만 목돈을 처음 쥐게 되자마자 유럽여행을 떠난다.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 플라스’에서 비를 맞으며 망연히 앉아있던 그는 일본인 여성 나오를 만난다. 어느 날 눈을 뜨자 나오는 ‘다음에는 9월 4일에서 만나요’라는 편지를 남기고 이미 사라진 뒤. 13년 뒤에야 주인공은 ‘9월 4일(Quartier Septembre)’이 파리의 지하철 역 이름이란 걸 알게 되는데….

“사라진 건물에는 관념이라는, 형태가 되지 못한 잔상만이 불확실하게 남겨진다…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아르누보는 소멸해 버렸다.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강한 바람에 휩쓸리던 작은 나비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어버리듯이…. 정말… 그렇게 끝나는 것일까?”

둥실둥실 떠다니는 듯한 감각, 어렴풋한 상실의 아쉬움에 대한 묘사는 일본 문단에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짐작케 한다.

‘켄싱턴에 바치는 꽃다발’ 주인공은 작가의 실제 이력과 같이 장기 잡지 편집장.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아침, 주인공은 영국의 한 노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주인공이 만들어 온 잡지가 일본 출신인 남편의 말년을 즐겁게 해주었다는 것. 애인의 눈 흘김을 무릅쓰고 영국으로 떠난 주인공은 노부인을 만나 죽은 남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물원 등의 놀이시설에 대한 관심, 갑작스러운 여행이나 실종,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명왕성의 발견’과 같은 사소한 역사를 얽어매는 점도 ‘또 하나의 하루키’라는 눈총을 받을 법한 대목. 그러나 미궁에 빠지지 않고 쉽게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전개는 오히려 하루키보다 명쾌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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