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49…잃어버린 계절(5)

  • 입력 2003년 10월 23일 18시 22분


일본 사람은 병원에서 출산하는 예가 많아져, 지난 몇 년 동안은 조선 사람들 집만 드나들었어요, 난산일 때는 일본 산파 이나모리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좋은 일이죠, 내 자랑이기도 합니다.

여보…당신한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말 않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영 말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 얘기하겠어요…셋째의 큰 아들 일입니다, 당신은 안아본 적도 없지요, 하기야 당신은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저 세상으로 갔으니…어디 그 아이 뿐인가요, 쇼타로도 지요코도 당신은 모르시죠, 아니다 참, 당신도 아네요, 안아주고 업어주고 손잡고 걷지는 못해도, 당신, 그 아이들을 따뜻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지요…그런데 그 큰 아이가…밀양에 남겠다고 하는군요. 세이지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고, 내지로 돌아가야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조선 사람들 나라가 되었으니 우리 일본 사람들은 있을 곳이 없다고 며칠 동안이나 설득했지만, 그 아이는 가 본 적도 없는 일본 땅에 내가 있을 곳이 어디 있느냐면서, 나는 밀양에서 태어나 밀양에서 자랐으니 내 고향은 밀양이라고, 가네스기(金杉)에서 스기 자를 빼면 김이 되니까, 난 오늘부터 김달우(金達雨)라고 이름도 바꾸겠다고 합니다. 결혼도 조선 여자하고 해서 조선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고집을 꺾지 않아요. 세이지가 한 대 갈겨서 입술이 터졌는데도, 벌써 결정한 일이라고 통 말을 듣지 않습니다. 소금물로 입을 헹구게 하고 터진 데다 멘소레담을 발라주면서 아무 내색은 안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 얘야, 네 말이 맞다, 암 네 고향은 밀양이고말고, 하지만 괴로운 일이 많을 거다, 김달우라고 이름을 바꾼다고 네 몸에 흐르는 일본 사람의 피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조선 여자하고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부모님이 허락을 해 주겠니? 설사 허락해 준다 해도, 네가 낳은 자식은 일본 사람, 일본 사람하고 손가락질을 받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틀린 건 아니야. 이 증조할머니는 몇 년 안 있어 일본의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혼은 밀양으로 돌아올 거다, 그래서 네 앞날을 지켜봐 주마….

여보, 좀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어요. 내 이 두 손으로 받은 아입니다. 이름은 이우근, 그래요, 우근씨한테서 한 글자를 얻어 그 아이 이름을 달우라고 지었었죠.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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