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정은/"증시의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7시 54분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미은행 구미동지점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50대 초반의 A씨가 “3억원을 예금할 테니 상호저축은행 수준에 맞춰 이자를 연 0.3%포인트 더 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한 것. 이 은행 이건홍 지점장이 본점 규정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하자 호통까지 치며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더 얹어 달라는 금액은 월 7만원 정도. 지점장은 고객을 확보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지갑을 열어 현금을 건넸다. A씨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한 장씩 일일이 세어본 다음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 지점장은 다음달에도 같은 요구가 계속되자 자신의 백화점 상품권을 그 액수만큼 주겠다고 제의했다. 고객은 상품권을 덥석 받아갔다. ‘고객유치도 좋지만 이건 너무한다’고 생각한 이 지점장은 결국 3개월 만에 이 거래에서 손을 뗐다.

“시장환경이 변했는데도 일부 개인 자산가들의 투자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초저금리시대에 이자 몇푼에 연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나은행 김성엽 분당구 백궁지점장은 23일 인근 주상복합단지 모델하우스에 1만여명의 신청자가 늘어선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줄을 선 주부들을 상대로 즉석 재테크 상담을 하며 금융상품 홍보를 했다.

부동산 열기의 현장을 몸으로 느끼면서도 뒷맛이 몹시 씁쓸했다고 한다. 김 지점장은 “시중 부동자금이 투기자산에 한꺼번에 몰릴수록 그로 인한 부작용은 더욱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부동산과 예금상품으로 자산을 늘리려는 투자자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증권관계자들은 주식과 채권 등 금융상품 투자자들이 부동산 시장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잘 알고 있다. 과거 증시 폭락으로 인한 손해와 그 ‘학습 효과’ 때문에 주식 관련 상품을 꺼리는 심정도 이해한다.

28일 주식시장에서도 개미투자자들은 종합주가지수가 연중 최고치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급등했는데도 순매도에 치중했다. 개미들이 주식시장을 외면하는 현상이 계속될 경우 국내 증권시장은 물론 기업의 자금조달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교보증권 정태석 사장은 “증권시장의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며 “증시에 대한 정부의 발상 전환과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시장 참여가 없으면 이런 상황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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