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시 대통령은 쌍둥이 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내년 5월로 예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의 연기를 요청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때로는 사소한 일이 국제정치를 결정한다”고 비꼬았을 정도. 72세의 나이로 올해 초 여섯 번째 아이를 낳아 유별난 자식사랑을 과시했던 머독씨 역시 사흘 전 다시 한번 부정(父情)을 세계에 알렸다. 작은아들 제임스씨를 자신의 미디어그룹 뉴스코퍼레이션의 자회사인 영국 위성TV 'B스카이B'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 것이다.
▷머독씨만큼 극단의 평가를 받는 사람도 흔치 않다. 51년 전 부친에게 물려받은 호주의 출판사업을 ‘제국’으로 키워낸 글로벌미디어 황제, 언론민주주의의 화신이라는 극찬이 있는가 하면 미디어제국주의의 수괴, 세계인의 정서를 오염시킨 저질 영상장사꾼이라는 비판도 따라다닌다. “나는 이윤을 위해 미디어를 경영한다. 존경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는 그의 언론관은 오늘날의 미디어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저돌적 야망과 대담성, 마키아벨리 추종자로서의 권모술수 등은 미디어제국을 일군 밑천이었다. 치열한 미디어 정복전을 치르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결국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걸까. “나는 영원히 은퇴 안 한다”던 머독씨도 신문부문은 큰아들 레이클란씨에게, 방송은 작은아들 제임스씨에게 맡겼으니까.
▷우리나라 같으면 새파란 재벌 2세의 경영권 상속도 ‘보통일’이지만 영국은 들끓고 있다. 머독씨의 B스카이B의 지분이 ‘고작’ 35%이고 나머지는 다른 주주들 소유인데 누구 마음대로 경영세습을 결정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야 어찌 주주의 이익을 챙기고 비판적 미디어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제임스씨는 홍콩 스타TV를 흑자로 만드는 등 경영능력은 있다는 평가다. 중국에 위성TV를 진출시키기 위해 파룬궁을 비판해 중국정부의 비위를 맞추는 등 아버지의 사업수완도 이어받았다. 그의 앞날이 어떤 미디어콘텐츠보다 흥미진진할 것 같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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