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축사에 나선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우리 당은 앞으로 중앙당과 시도지부 후원회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며 “우리 당과 정치가 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워도 이런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 대표가 “기업후원금은 아예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혹시 기업 명의로 봉투를 내신 분이 있다면 번거롭겠지만 행사가 끝난 뒤 모금함에서 봉투를 꺼내 개인 명의로 바꿔 달라”고 당부하자 1000여명의 참석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등단한 하순봉(河舜鳳) 전 최고위원은 더 솔직한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어제 저녁 어느 모임에 갔더니 앞에 앉은 사람들이 전부 저를 도둑놈 보듯 하는 것 같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행사 초청자인 이경재 의원도 인사말을 통해 “어제 중앙당과 시도지부의 각종 후원회를 취소한다는 발표가 나가자 오늘 제 개인후원회마저 취소된 줄 알고 안 오신 분이 많다”고 불만 섞인 호소를 했다.
보통 때 같으면 축제 분위기였을 후원회장이 이처럼 ‘처량한 호소’로 메아리치는 것을 지켜보던 한 당직자는 “정치권의 업보(業報)”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각 당은 각종 정치개혁안의 실효성과 타당성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연일 파격적인 방안을 앞 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정치권의 요즘 분위기는 다급하기만 하다.
하지만 정치권이 이런 지경까지 내몰린 것은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돈 먹는 하마’란 지적을 받아온 고비용 정치구조의 해소에 중지를 모으기보다는 공영제 확대라는 명분 아래 국고 보조를 늘리는 데만 힘을 쏟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 가릴 것 없이 ‘현실’을 핑계 삼아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방안 마련을 외면해온 게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런 정치권의 업보가 한바탕 ‘씻김굿’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검은돈과의 절연을 다짐하고 있는 지금도 각 당은 어떤 방식의 선거구제를 택해야 자당의 총선 전략에 유리할까를 따지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의원의 개인후원회 폐지까지 거론될 만큼 ‘개혁의 광풍(狂風)’이 불고 있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개인후원회마저 없어지면 오히려 검은돈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면서도 “지금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일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성원 정치부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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