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남영/정치개혁 급할수록 꼼꼼하게

  • 입력 2003년 11월 6일 18시 32분


국회의장과 4당의 원내총무, 정책위의장이 11월 5일 지구당 폐지, 완전선거공영제를 내용으로 하는 정치개혁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비자금 정국으로 위기를 맞은 정당들이 돈 적게 쓰는 정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육책일 것이다. 하지만 여야 정당이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마련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은 환영한다. 부패와 불법의 온상처럼 돼버린 우리의 정치가 이제는 국민을 위해서 기능할 수 있도록 정치개혁을 잘 이뤄내기를 기대도 해본다.

▼지구당 폐지 부작용 대비해야 ▼

그러나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정치개혁 논의를 보면서 충분한 사전 점검 없는 졸속 개혁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개혁의 방향이 아무리 좋다 해도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부작용 없이 본래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당 폐지는 정치비용의 절감이라는 차원에서는 상당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구당이 없어진다는 것은 지역 차원의 공식적인 정당활동의 주체가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정당마다 연락소 같은 최소 관리조직은 유지한다고 하지만 지구당이 폐지되면 정당의 주요기능 중 하나인 국민과 중앙정치의 연계기능이 아무래도 소홀해질 것이다.

지구당이 없는 상황에서는 불법적인 사조직이 그 기능을 대신해 정치과정이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지구당 폐지 합의를 입법화 하는 과정에서, 또 그 이후 실행 과정에서 예상되는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을 강구하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지구당 폐지는 또 중앙당의 비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당 지원비가 사라지면 각 정당에 지급되는 막대한 국고보조금이 중앙당에 집중돼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중앙당의 힘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공직후보 선정에 대한 중앙당의 영향력 확대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각 정당이 상향식 공천의 뼈대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지구당이 폐지되면 후보 경선 과정에 중앙당의 개입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풀뿌리민주주의의 기본인 상향식 공천제의 의미가 크게 훼손될 것이다.

완전선거공영제도 몇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선 모든 선거비용을 국가가 지불하는 것에 대해 좋아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또 완전선거공영제는 후보 난립을 초래할 것이고 이는 선거비용 증가와 유권자 혼란 등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이와 함께 완전선거공영제에 당내 경선비용을 포함시킬지의 문제도 논의돼야 한다. 당내 경선에서도 많은 비용이 소모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이고 일회적인 정치개혁은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산출해 전체적으로 볼 때 개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여야는 정치개혁 논의의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 단순히 ‘고비용 정치구조 타파’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정치생산성 향상’이라는 보다 큰 시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지구당 폐지와 더불어 원내중심 정당체제의 구축 방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중앙당을 과감히 축소하고 정당의 모든 정책기능을 국회로 흡수해야 한다. 정당국고보조금의 상당 부분을 원내 정책활동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정책정당, 생산성 있는 국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 큰 틀에서 접근을 ▼

둘째, 정치관련법들을 개별적으로 심사해 개정할 것이 아니라 정책정당 등 개혁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관련 법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셋째, 개혁은 빠르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정치개혁이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부수효과(side effect)를 면밀하게 검토해 비록 느리더라도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강한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정치개혁의 성공 여부는 결국은 국민 설득에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국민이 싫다면 할 수 없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각 정당은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남영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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