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타는 소년=소년은 어려서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다. 서울 노량진 이모네 근처의 큰 나무는 소년에게 놀이터였다. 담벼락이건 지붕이건 오를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올랐다. 친구 집 담벼락을 기어오르다 그 모습을 본 친구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남산 근처에 살면서 산을 원 없이 오르내렸다.
공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성적도 나빴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대학에 갈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졸업하면 아버지 사업이나 물려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에 카퍼레이드 장면이 들어왔다. ‘동국대 산악부 마나슬루 등정.’ 순간, 결심이 섰다. 목표가 생겼다. 재수 끝에 동국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산악부에 들어갔다.
▽히말라야, 히말라야=산행은 도봉산에서 시작해 점점 높은 곳으로 이어졌다. 산이 좋았다.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군대에 다녀와 복학한 뒤 스물여섯 청년이 된 그는 1989년 드디어 히말라야로 향했다. 처음 6427m의 랑시샤리를 오른 뒤 40여차례나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찾았다. 히말라야는 그에게 마음의 고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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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히말라야가 좋았지만 히말라야가 처음부터 그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1991년 마침내 히말라야의 최고봉이자 세계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00m 빙벽에서 추락해 얼굴이 함몰됐다. 살아난 것이 기적이었다. 마취제도 없이 얼굴의 상처를 꿰매고는 들것에 실려 내려갔다. 에베레스트가 그를 허락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93년이다.
▽그랜드슬램을 목표로=산악인들 사이에 통하는 ‘그랜드슬램’이 있다.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봉우리 14곳과 각 대륙 최고봉 7곳(아시아,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남극대륙)의 정상, 그리고 3극점(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에 도달하는 것. 아직 아무도 이루지 못한 일이다. 어느새 히말라야 14좌와 각 대륙 최고봉의 정상을 모두 밟은 그는 북극점과 남극점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2003년 봄, 드디어 그는 북극점을 향했다. 북극점은 어느 산보다도 더욱 그를 힘들게 했다. 영하 40도의 혹한에 울퉁불퉁한 얼음으로 뒤덮인 땅을 썰매를 끌고 전진하는 일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대원들의 크고 작은 사고로 일정은 조금씩 늦춰졌다.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했다. 그는 실패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꿈을 접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16일 남극점으로 향한다. 북극점에도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성공 여부는 사실 그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이 허락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 산악인은 ‘산을 정복한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산을 오를 뿐이고 정상은 반환점일 뿐이다.
:박영석 약력:
△1963년생:박영석 약력:
△1997년 1년 만에 8000m 이상 고봉 6개를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함
△2001년 8월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개를 세계 최단시간에 등정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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