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선우(33)의 두 번째 시집.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2000)에 이어 여전히 여성의 몸에 시선을 두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여성성이 여성의 전유물을 넘어 생명체의 원초적 본성으로 그려져 시인이 구축한 여성성의 세계는 더욱 넓어진 듯 보인다.
“내 자신이 여성이고, 내 존재를 규명하는 데 있어 내가 가진 여성성은 생물학적인 의미 이상으로 중요한 코드가 되죠. 그런 과정에서 여성의 육체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갑니다. 제게 있어 잘 쓰인 시란 배고픈 아이에게 물리는 어머니의 젖과 같은 것이거든요.”
김선우의 시에는 피, 눈물, 생리혈, 양수, 오줌, 똥 등 살아있는 몸에서 나오는 ‘생즙’이 고여 있다. 탄생과 죽음, 출산과 출생 등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의 사건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분출물.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알 것 같네 어머니는 물로 빚어진 사람/가뭄이 심한 해가 오면 흰 무명에 붉은,/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올렸다는 옛이야기를 알 것 같네/저의 몸에서 퍼올린 즙으로 비를 만든/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물로 빚어진 사람’ 중)
‘저물녘 저 태양’도 새로운 하루를 낳는 ‘금빛 항문’(‘어느날 석양이’)이고, 여자들이 산비탈에 앉아 오줌을 누면 ‘땅 끝까지 강물소리 자분자분 번져가’ 나무를 키운다(‘오동나무의 웃음소리’).
‘개부처손’ ‘다래사리’ ‘짜디짠 잠’ 등의 시에는 불교적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시인은 열한 살 차가 나는 언니인 청도 운문사의 영덕 스님을 통해 문학적 감성과 내면을 키울 수 있었다고 했다. 시인도 대학을 졸업한 후 “마음에 절망이 커” 스님이 되려고 했지만 시를 통해 자신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집 뒤편 ‘시인의 말’에 ‘문득 길의 몸을 본 것 같다. 더듬거리며 그 몸을 찾아 나설 때가 다시 오고 있음을 안다’고 쓴 시인은, 해외 생태공동체를 둘러보기 위해 3년여로 기한을 잡고 11월 1일 출국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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