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역사는 200여년에 불과하지만 19세기 초 송흥록과 모흥갑(1803∼?) 같은 전설적인 명창이 등장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이들은 청중을 마음대로 웃기고 울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임금 앞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송흥록과 비슷한 연배인 모흥갑은 헌종에게서 종2품의 벼슬을 받았고, 송흥록은 철종에게서 정3품을 제수받기도 했다. 당시는 신분 낮은 광대가 높은 벼슬을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때였으니 이만저만한 파격이 아니었다. 왕마저도 이들의 소리에 넋을 잃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명창으로 소문이 나면 큰 돈을 벌었다. 내로라하는 양반집들이 다투어 명창을 불러들여 소리를 청하니 요즘 잘나가는 ‘스타’와 다를 게 없었다. 당시 양반들은 시 쓰기, 그림 그리기 같은 예술적 감각을 갖추는 것이 기본 교양이었다. 이 같은 문화적 풍부함이 판소리를 살찌우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소리꾼들의 독창성을 얻기 위한 노력도 치열했다. 스승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소리는 ‘사진 소리’라고 해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소리를 해야 인정받았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 문화산업도 이 두 가지를 확실히 갖춘다면 성공이 보장될 것이다.
▷판소리가 유네스코의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됐다. 반가운 일이다. 판소리는 서양에는 있을 수 없는 독특한 성악이다. 한국의 영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호평을 받는다. 그것은 판소리를 만들어낸 하층계급의 한(恨)과 정(情)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판소리를 이해하는 대중이 날로 줄고 있는 점이다. 사람들이 판소리를 모르는데 어찌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진정한 소리꾼을 가려내는 ‘귀 명창’을 확산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홍찬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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