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독립운동가였던 이 선생은 2000년 직장암 판정을 받고 서울보훈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11일 병세가 악화돼 12일 오전 8시50분경 운명했다.
3·1운동 참가에 이어 항일무장저항단체인 신민부(新民府)에 가담해 무력항일 운동을 펼친 이 선생은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군자금을 북간도 독립군들에게 제공하는 등 국내외에서 큰 활약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이 선생은 귀국 후 항일 역사 편찬사업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광복회장직을 맡아 숨은 독립유공자를 찾아내기 위해 헌신했다.
보훈처와 광복회는 선생의 장례를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장례위원회(위원장 김우전·金祐銓 광복회장, 명예위원장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를 구성해 사회장으로 거행하며, 1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관에서 영결식을 갖고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키로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병환씨와 아들 숭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9시. 02-478-7099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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