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책을 읽고 있다. 어떤 풍경이 연상되는가. 책상에 앉아 눈으로 열심히 책장을 쫓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역사 속에서 규정된 ‘책읽기’의 한 가지 유형에 불과하다.
전통사회에서 책읽기란 ‘소리 내어 읽는 것’이었다. 신문조차도 유식한 사람이 읽으며 뜻을 풀이해주었고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그 소리를 귀로 들어 받아들였다. ‘누가 읽는가’도 중요하다. 유교사회에서라면 여성 혹은 농부나 상인이 책 읽는 장면은 쉽게 상상할 일은 아니었다. ‘어떤 내용을 읽는가’에 관해서라면 문제가 훨씬 복잡해진다.
이 책은 다양한 자료를 들춰가며 근대의 대두와 함께 출현한 ‘책 읽기’의 새로운 양상을 추적한다. 저자는 ‘1920년대’라는 시대에 주목한다. 오늘날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책읽기의 형태와 관념 대부분이 이 시기 이 땅에 상륙했으며, 심지어 우리가 떠받들고 있는 문예상의 ‘전범(典範)’까지도 이 시기에 고착됐다는 분석이다.
왜 20년대인가. 저자에 따르면 이 시대에는 근대적 학교와 매체의 등장으로 문자 해독력을 가진 독자가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했다. 독서는 이 시기에 일상적이며 근대적인 ‘오락과 취미’의 영역으로 대두됐다. 도서관과 학교의 신설은 입을 사용하지 않는 ‘눈으로만 읽기’의 새로운 경향을 탄생시켰으며, 눈으로만 빨리 읽어내기 위한 인쇄와 편집상의 변화 및 화보 사진 등도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어린이책의 선별이 부모들의 고민거리가 된 것도, ‘몸’에 대한 관심에 따라 포르노그래피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특히 ‘문예적 전범의 정립’이 이 시기에 이뤄졌음을 논증하는 데 저자는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1910년대 말, 전문적인 식견에 의한 문예 텍스트의 가치평가 즉, ‘비평’이 시작됐고, 이에 따라 1930년대 초반부터는 당대 작품 중 ‘명작의 반열에 들 만한 작품’을 선별하는 작업이 시작됐다는 것. 그 결과 오늘날 교과서의 추천도서에까지 1920년대 작품이 중요한 ‘전범’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독자가 전문가들의 가치판단을 바로 따라가지는 않았다. 저자는 1920, 30년대 가장 많은 독자가 선택한 문예작품이 당대의 인기작가인 염상섭이나 이상의 것이 아니라 ‘춘향전’이었다는 사실을 든다. 1910년대부터 편지쓰기 방법을 가르치는 ‘척독’ 관련 서적이 활발히 간행된 결과 이윽고 낭만적 서간체가 문학적 취향의 준거가 된다.
이 시대 또 하나의 주요한 경향은 일본어 보급 확산에 따라 조선어 출판물 발간이 활력을 잃은 것. 비교적 자유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일본어 책에 비해 검열을 통과해야 하는 조선어 텍스트가 ‘체제 내적’ 성격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독자들의 ‘일본어 책 선호’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새롭게 풀어 쓴 것. ‘1920년대 동아일보에 실린 책 광고’ 건수를 장르별로 밝히는 등 자료가 풍성해 비교적 쉽게 읽힌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