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조혜연 4단 “내 師父는 인터넷…여자 이창호 되겠다"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8시 05분


사진제공 사이버오로
사진제공 사이버오로
단발머리에 치아보정기를 달고 도수 높은 안경을 썼던 소녀가 어느새 숙녀로 자라 있었다.

입단 7년 만에 여성 바둑의 정상에 오른 조혜연 4단(18·사진).

최근 여류국수전에서 철녀 루이나이웨이 9단을 2 대 0으로 꺾고 여성 바둑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조 4단의 승리는 1990년대 초 이창호 9단이 당시 천하무적인 조훈현 9단을 누른 것과 같은 무게의 사건이다.

“이번에 이기긴 했지만 루이 9단이 여전히 강해요. 제가 타이틀을 딴 건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그는 한사코 겸손이 아니라며 “루이 9단의 관록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 누구보다 바둑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규병 9단은 조 4단을 천재형 기사라고 말한다. 조 4단은 프로기사 입단을 위한 정식 코스를 밟지 않고도 정상에 올랐기 때문에 그의 기재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는 뜻이다.

집이 경기 수원시에 있는 조 4단은 한국기원이 있는 서울까지 혼자 오갈 수 없었다. 노근수 아마 6단이 운영하는 동네 기원에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 4단의 라이벌인 박지은 4단이 연구생으로 착실히 수업을 받은 것에 비하면 ‘야인’으로 떠돈 셈.

조 4단은 대신 PC통신 ‘천리안’ 바둑실을 무대로 삼았다. 어린 나이에 바둑 실력이 야무진 조 4단은 금세 천리안 바둑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다. 임동균 박영균 7단 등 고수들도 조 4단과 자주 상대해줬다. 그는 “PC통신이 없었다면 아마 바둑 아닌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동냥 바둑’을 두었지만 일취월장의 실력으로 바둑을 배운 지 3년 만에 입단 수준에 올라섰다. 그의 11세 입단은 조훈현 이창호 9단에 이어 3번째 최연소 입단 기록. 입단 후 대회가 있을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오갔다.

아직도 그는 1주일에 한번 프로기사 연구모임인 충암연구회에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주로 집에서 바둑을 공부한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공부해야 더 집중이 잘 된다는 것.

그는 “인터넷 바둑사이트인 사이버오로에서 다른 프로기사와 제한시간 5분짜리 초속기를 두거나 최신 기보를 내려받아 연구한다”고 말했다. 반상에선 송곳 같은 수읽기로 상대를 울리는 고수지만 강호 세계에선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조 4단. 그는 “여성 바둑계의 이창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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