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공희정/“골목청소, 오늘은 내가”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8시 18분


공희정
며칠 전 출근길이었다.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밤새 바람에 떨어져 쌓인 낙엽을 쓸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아침이면 집 앞을 청소하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런 정겨운 모습을 통 볼 수 없다.

이들 중 한 분의 얼굴이 낯익어 반가운 마음으로 “어떻게 낙엽 청소에 나섰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그분은 “낙엽은 자꾸 떨어지는데 내 집 앞조차 쓰는 사람이 없잖아요. 골목길이 난장판이 될 것 같아 나라도 청소하기로 했다”며 필자에게도 주말에 같이 골목 청소를 하자고 제안하는 게 아닌가. 필자는 골목 여기저기에 낙엽과 쓰레기가 나뒹구는 것을 보면서도 무심하게 지나치기만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큰소리로 “그럼요”라고 대답하고 얼른 현장을 떠났다.

골목은 개인적 공간인 ‘집’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첫 번째 길목이자 세상을 향한 워밍업의 공간이다. 첫 출근하는 한 젊은이에게 골목길의 동네 아저씨가 “축하해. 열심히 일해”라고 격려의 말을 건네는 한 TV광고처럼 골목에서 만난 이웃과 나누는 몇 마디가 새삼 힘이 될 수 있다. 골목은 또 치열한 경쟁의 장인 세상으로 나서기 전에 한번쯤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골목은 주차 문제 등으로 이웃간에 싸움까지 벌어지는, 거칠고 이기적인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들의 변화는 골목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골목을 통해 연결되는 세상은 상대방을 밀어 넘어뜨려야 살아날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변한 지 오래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경쟁 상대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비뚤어진 의식이 팽배하다. 그런 의식은 우리 조직, 우리 회사만 잘 살 수 있다면 다른 조직과 사람들은 어찌 돼도 상관없다는 식의 집단이기주의로 표출돼 결국에는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왜 우리는 혼자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일까. 우리 모두 골목을 쓸어보자. 함께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회사원·서울 마포구 합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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