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천광암/나라 이미지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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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코카콜라의 최고경영자 로베르토 고이주에타가 실질적 창업주인 로버트 우드러프를 찾아갔다. 고이주에타는 제조방법과 브랜드를 바꾸겠다며 동의를 구했다. 20만명을 대상으로 브랜드를 가리고 맛 실험을 했더니 신제품(뉴 코크·New Coke)이 1위, 경쟁제품이 2위, 기존제품이 3위로 나타났다는 설명과 함께. 객관적 숫자 앞에서는 브랜드 전략의 대가(大家)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95세의 우드러프는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하게”라고 힘없이 말했다. ‘뉴 코크’는 대실패였다. 소비자들의 외면과 항의에 내놓은 지 석 달 만에 ‘뉴 코크’를 거둬들여야 했다. 코카콜라는 소비자가 맛이 아니라 이미지를 산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러시아 ‘보따리장수’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서울 동대문시장이 울상을 짓고 있다. 중국산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이미지가 나빠져서라고 한다.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신동규 수출입은행장의 설명은 이렇다. “러시아인들도 중국 네팔 방글라데시 등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안다. 겉에 한국 상표가 붙어 있어도 사실상 ‘메이드 인 차이나’나 ‘메이드 인 네팔’로 여긴다.”

▷한 나라의 이미지는 외국자본 유치에도 영향이 크다. 최근 외자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국이 법인세를 낮추는 등 유인책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그러나 법인세와 제도 등은 부차적인 고려사항일 뿐이다. 나라마다 세법이나 제도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장단점을 따지기는 어렵다. 결국 그 나라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투자 의사결정을 좌우하게 된다. 빨간 띠를 둘러맨 노동자, 돌, 화염병, 쇠파이프, 죽봉이 CNN 화면을 채우는 한 한국에 선뜻 투자할 외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가이미지위원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파트리크 모뤼스 프랑스문화원장은 “프랑스인의 머릿속에는 한국에 관한 이미지가 없다”면서 “한국은 토론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건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자리에서 자비에르 스메켄스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은 고건 국무총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월드컵으로 좋아졌던 한국의 이미지가 노사관계 악화로 타격을 입었다. 과연 한국 정부는 국가 이미지 구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 정치인들이 있는 자리였다면 이런 질문도 나왔을 법하다. “돈 세탁은 그만하고 ‘부패 국가’ ‘전투적 노조 국가’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없느냐?”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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