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백제 유물'

  • 입력 2003년 12월 3일 18시 14분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 유물들은 현재 러시아의 푸슈킨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트로이 유물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러시아로 간 사연은 이렇다. 독일 출신의 슐리만은 이 유물을 1880년 독일 정부에 기증했다. 유물은 트로이 왕의 이름을 따 ‘프리암의 보물’로 명명되고 베를린박물관에 보관됐으나 2차세계대전 중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독일을 점령한 러시아가 빼돌렸던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독일은 반환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정당한 전리품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터키도 자기 땅에서 출토된 것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사례를 보면 문화재뿐 아니라 그 역사까지도 힘의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7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남한에서도 연천 파주 제천 단양 등 곳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굴됐다. 수많은 국가와 사람들이 이 땅을 거쳐 갔을 터이니 우리는 역사 전통에 관한 한 긍지를 가져도 된다. 그러나 한반도 역사의 실체를 정확히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고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수천년 전 일을 밝혀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역사 기술은 언제나 승자의 몫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옛 문헌도 전적으로 믿을 것은 못 된다. 우리 역사에도 정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삼국통일 과정에서 패배자로 남은 고구려와 백제는 역사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다. 고구려의 경우 중국에 당당히 맞서 영토를 확장했던 위업으로 그래도 평가를 받고 있으나 유적들이 북한과 중국 지역에 있는 탓에 심도 있는 연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백제는 문화수준이나 국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여전히 자세한 역사가 실종된 ‘잃어버린 왕국’으로 남아 있다. 백제의 초기 도읍지로 기록되어 있는 하남위례성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해서조차 그동안 학설이 분분했으며 풍납토성으로 굳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4, 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시대의 화려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백제 역사에 다시 눈길이 쏠리고 있다. 사실 역사복원 문제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 중국 등 인접국들은 그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보려 하기 때문에 외부에 의한 역사 왜곡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바른 역사를 복원하고 지키려면 국력이 강해야 하고 역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야 한다. 역사 왜곡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번 흥분하고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평소 우리 역사의 곳곳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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