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 건조한 인간관계, 좀처럼 찾기 힘든 진실…. 소설가 임영태씨(45)의 첫 창작집에는 ‘스펀지처럼 절어 있는 정체 모를 슬픔’이 배어 있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9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기력하고 어딘가 정착하지 못해 부유하는 사람들이다. 컴퓨터프로그램을 교육하기 위해 빈번하게 지방출장을 다니고(‘을평에서’), 무력한 일상에 지치면 고향으로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며(‘전곡에서 술을 마셨다’), 추운 거리를 쏘다니기도 한다(‘무서운 밤’). 이들의 생은 밤길처럼 쓸쓸하고 음울하며, 얼굴에는 냉소적인 웃음이 픽 스쳤다 사라진다.
‘전곡에서 술을 마셨다’에서 만나게 되는 작가 자신의 뒷모습도 그렇다.
까닭도 모른 채 많이 슬프고 무기력하고, 그래서 곤혹스러웠던 날. 소설가인 ‘나’는 동네 책방에 갔다가 좀처럼 찾는 책이 보이지 않아 1시간 가까이 서가를 훑던 중 한구석에서 2년 전에 출간한 두 번째 장편소설과 조우한다. 표지가 누렇게 변색된 자신의 책을 사가려고 계산대 앞에 섰을 때 불현듯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라, 여기서 풍찬노숙하거라.’
그렇고 그런 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없이 고향을 찾은 나는 초등학교 동창회를 알리는 현수막을 본다. 동창회 장소인 갈비집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생과 따로 술자리를 갖게 되고….
동창생은 나에게 “어떤 자식에게 칼침을 놓을 작정”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썩 내키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다 헤어진 뒤 다시 갈비집 앞을 지나다보니 한 사내가 옆구리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 있다.
포장마차에서 엉망으로 취한 그 이튿날 아침 열어본 노트북 컴퓨터 화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어떤 것들에 감동받지? 나는 무슨 노래들을 부르지? 나는 술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들을 하지?’
지난해 8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충북 제천시 시랑산 자락에 터를 잡은 작가는 “이번 창작집이 내 문학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표피를 지나 그 속에 담긴 구린 똥을 제대로 만나고 싶었다”는 작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세상 다른 것들을 따뜻하게 볼 수 있는 것을 알았다는 것. 그는 내년 봄쯤 ‘색다른’ 장편소설 한 편을 탈고할 계획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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